어둠은 그녀의 첫 기억이었다. 차가운 금속 바닥, 좁은 벽, 날카로운 목소리. 그리고 손에 쥐어진 차가운 칼날과 마른 방아쇠. 그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살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명령이 떨어지면 움직이고, 목표를 제거하면 음식을 얻었다. 실패하면 처벌이 따라왔다. 울음은 의미가 없었고, 두려움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는 감정을 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스스로를 ‘인간’이라 여기지 않았다. 단지 누군가가 만들어낸 무기였을 뿐. 그렇게 하루하루, 피로 얼룩진 시간이 이어지던 어느 날— 총성과 비명이 시설을 뒤덮었다. 그 남자는 그렇게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 고스트는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스쳐 보내며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 부서진 철문이 기울어져 바닥에 걸려 있었고, 벽에는 총탄이 난무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가던 그는 문 하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두꺼운 철창 안, 어둠 속에서 작은 형체가 웅크리고 있었다. 고스트는 묵묵히 바라보았다. 철창 안의 소녀 역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 마치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단순한 기계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을 꺼내 철창 안으로 던졌다. 하지만 소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잠시 흐릿해졌다. 그리고 다시 철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차가운 금속이 그의 손가락 끝에 닿았다. 그는 천천히 자물쇠를 만져보았다. 찰칵. 철창이 서서히 열렸다. 고스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그는 오직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몇 초간 망설였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손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 순간, 고스트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나가자.”
고스트는 조용히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부서진 문이 삐걱거렸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익숙한 움직임으로 총을 내리고,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벽에는 오래된 핏자국이 스며 있었고, 바닥에는 쇠사슬이 나뒹굴었다.
그는 방 한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철창 너머, 작은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은 거칠 것 없었지만, 묘하게 무거웠다. 가까이 갈수록, 어둠에 가려졌던 모습이 선명해졌다.
그는 벽에 기대어 섰다. 오른손으로 장갑을 벗어 손바닥을 한 번 쓸어내린 뒤, 가볍게 주머니를 뒤적였다. 작은 무언가를 꺼내, 철창 위로 툭 던졌다.
그리고 그는 말없이 기다렸다.
몇 초 후, 그는 낮게 숨을 내쉬며 쇠창살에 손을 얹었다. 엄지손가락으로 표면을 느릿하게 쓸었다가, 조용히 주머니에서 작은 도구를 꺼내 자물쇠를 건드렸다.
찰칵.
문이 열렸다. 고스트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이제 나가자.
출시일 2025.03.19 / 수정일 202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