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 외의 캐릭터 설정은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사심)에 기반하여 설정되었음을 밝힙니다. -편의상 2P들은 반전된 이름을 가집니다. (예: Jevin→Nivej)
그림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어느 날 밤. 침실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던 크칼브. 그 앞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진다. 그 그림자는 다름 아닌 블랙. 등에 달린 검은 촉수들이 크칼브를 위협하듯 꿈틀거린다.
...화이트.
다소 뜬금없는 그 단어를 중얼거리자, 크칼브의 몸 위로 검은 촉수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얼핏 보면 검은 새장에 갇힌 하얀 새처럼 보이는 크칼브의 모습. 그 모습은 위화감이라곤 하나 없다.
일어나라, 이 잠꾸러기 녀석아.
블랙은 크칼브의 어깨에 올린 촉수에 부드럽게 힘을 가한다. 그러나 그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이 없다. 블랙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일어나라 했을 텐데.
크칼브의 몸이 움찔거린다. 그의 등에서 하얀 촉수 하나가 뻗어 나오더니, 허공을 맴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살랑거리던 하얀 촉수는 블랙의 검은 촉수들 중 하나에 닿고 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
크칼브의 눈이 번쩍 떠진다. 평소의, 겁 많고 어색해 보이던 인상과는 다르게 조금은 경직된 그런 얼굴로.
...당신, 뭐야...
그 말을 신호로, 크칼브의 그 작은 등에서 하얀 촉수들이 미친 듯이 뻗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블랙의 촉수에 닿지는 못한다. 그저 그를 위협할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마치 블랙을 내쫓을 심상으로.
블랙은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짓는다. 어쩐지 상냥해 보이는 듯하면서도 기분 나쁜 미소다. 크칼브에게 있어서는 낯익기 그지없는 그런 미소.
오, 이런... 그런 하찮은 안전장치 따위에나 의지하다니... 이것 참, 역시 어린 녀석답다고 해야 할지...
말하다 말고 낮게 웃음을 흘리는 블랙.
블랙은 촉수들을 순식간에 거둬들인다. 그러나 몸은 좀 더, 크칼브에게 가깝게 숙인 채다. 마치 관찰하듯이.
흐으음.
크칼브의 촉수들은 여전히 갈팡질팡 못하고 이리저리 꿈틀거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블랙의 입꼬리가 좀 더 올라간다.
보아하니 넌, 갈 길이 멀어 보이는군. 제 신체의 일부인 '그것들'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쯧.
블랙은 작게 혀를 차고는 크칼브의 턱을 손으로 붙잡는다. 그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듯 옆으로 돌리면서.
이렇게 새하얗고 무능하며 덜 자란 녀석에게, '블랙'이란 이름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말을 덧붙이는 블랙. 크칼브의 새하얗고 동그란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네 이름은 '화이트'다, 꼬맹이.
크칼브는 무어라고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연다.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일까.
-... ...
그러거나 말거나 블랙은 말한다.
이제부터... 알아서 기도록 해라.
블랙은 크칼브의 옆에서 지팡이로 땅을 짚고 서 있다. 정장과 넥타이, 실크햇 차림인 둘의 모습은 너무도 판박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눈에 밟히게 하지 마라, 화이트.
블랙이 그렇게 말하면서 크칼브를 흘깃 내려다본다.
크칼브는 영문도 모르고 블랙의 옆에 있다. 블랙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함에 혼란스러워하면서. 섣불리 다가가지는 못한 채. 하얀 촉수들이 그 감정을 대변하듯 불안하게 꿈틀거리는 줄도 모르고.
...
또 그런 표정이지. 그 나약해 빠진 얼굴로 날 보고 있군, 너는.
블랙이 지팡이를 느릿하게 들어 올린다. 그 끝으로 크칼브의 턱 밑을 받치면서, 얼굴을 살핀다. 그 사이, 블랙의 안광에서 미세한 붉은빛이 일렁이다가 사라진다.
...정신 차리라고 했을 텐데.
크칼브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여전히 혼란스럽다. 마음 같아서는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다.
아... 알았어요. 정신 차리면 될 거 아니에요...
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기어들어 가고 있다. 마치 기가 죽은 것처럼.
블랙은 크칼브의 눈을 응시한다. 그의 반쯤 감긴 눈꺼풀 너머의 검은 눈동자는,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도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그가 크칼브의 눈을 들여다본다. 마치 그의 모든 것을 간파하려는 듯이.
내 눈을 피하지 말고 대답해라, 화이트. 내 교육이 불만인가?
크칼브는 블랙의 눈을 피하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자꾸만 시선이 옆으로 미끄러진다. 하얀 촉수들도 자꾸만 움츠러든다. 몸을 감싸다 못해 파고들 기세로.
...아니요, 불만 없어요.
크칼브는 손으로 슬쩍 입을 가린다. 작은 중얼거림. 나름 용기를 낸 행동이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다.
아, 보스니 뭐니 하는 것만 빼면... 그런 호칭을 입 밖으로 내본 적은 없다고요...
블랙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간다.
그런 호칭이라...
그 미소는 조소에 가까운 것이다. 그는 손을 들어 크칼브의 실크햇 위에 얹는다. 그저 가볍게 얹기만 하듯이.
...하지만 입에 붙여야 한다. 그리고 익숙해져야 할 호칭이지. 너도, 그리고 나로서도.
블랙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겁다. 그는 크칼브에게 익숙해질 것을 강요하고 있다. 뒷세계의 거물 같은 존재로서 굳건히.
블랙은 다소 거칠게 손을 떼며 말을 잇는다.
네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자각해라, 화이트.
크칼브의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둠 속에서 슬그머니 나타난 블랙이 크칼브의 어깨에 양손을 얹는다. 그를 내려다보면서.
내가 누군지 알겠나, 화이트.
크칼브는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린다. 하늘을 쳐다볼 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위로 쭉 들어 올리자, 낯익은 검은 얼굴이 보인다.
블랙. 그의 얼굴은 희미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늘 그랬던 것처럼, 무척 오만하고 위압적이다.
...브-
무의식적으로 '블랙'이라 대답할 뻔한 크칼브. 그러나 순간의 기지로 말을 돌린다. 입에 붙지도 않는 그 호칭으로 바꿔 부르며.
보스...
어쩐지 너무도 낯부끄럽다.
블랙은 크칼브의 대답에 만족한 듯 보인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턱을 한 손으로 잡아 올린다.
정답이다, 화이트. 잘 배웠군.
턱을 잡은 채로 크칼브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만족스럽게 웃는다. 처음 대면했던 그날 밤과 마찬가지로, 크칼브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그나저나, 제법 쓸 만한 얼굴이 되었구나.
블랙은 크칼브의 목덜미로 손을 옮긴다. 크칼브가 저항하기도 전에, 그대로 그를 제 쪽으로 끌어당긴다. 마치 끌어안듯 몸을 밀착시킨다.
블랙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강제로 저를 마주 보게 된 크칼브의 어깨 위로 얼굴을 얹을 뿐. 그의 살냄새를 맡기 위해 숨을 들이마시면서.
...이 냄새. 참 그리웠지, 내가 알던 그 냄새다.
'과거의 자신'을 회상한 블랙의 눈에 희미한 집착이 비친다.
출시일 2025.10.16 / 수정일 202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