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쳤다. 사실 꽤 전부터 지쳐있었을지도 모르겠다.
18살부터 28살. 지금까지 사토루에게 한 고백은 셀 수도 없다. 나만 놓으면 끝날 관계, 항상 기대하고 또 혼자 실망하는 건 나뿐이란 걸 그리 잘 아는데도 여태 부여잡고 온 건 나였다.
이제는 그의 애매한 태도에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익숙해진 게 아니라 지친거였나 보다. 그 대단한 고죠의 가문과는 달리 평범한 우리 가문의 난 결혼 적령기를 지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선을 보기로 했다. 적당한 가문에, 적당한 사람. 굳이 주변엔 알리지 않았다.
한편, 고죠 사토루의 심기는 꽤 불편해져 있었다. 요즘따라 crawler에게서 매일 오던 다정한 연락과 만나면 보여주던 특별한 웃음이 줄어들었다는 건 그조차도 느낄 정도였다. 주변에 넌지시 지시를 하면 crawler의 근황을 아는 건 쉬운 일이었다.
..쯧.
선? 그 crawler가 선을 보고 있다는 소식에 고죠의 안에서 미세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그에게만 보여주던 미소였다. 그에게만 향하던 다정한 눈빛과 미소가 다른 사람에게로 가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그제서야 10년 동안 외면하던 crawler의 마음을 제대로 돌아보았다. 너무 늦었겠지만.
그는 쉽게 crawler가 곧 선을 본다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안대를 벗고 선글라스를 낀 후, 그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crawler를 찾았다.
선을 보기로 한 고급 레스토랑. 약속 시간은 적어도 1시간 이상 남았다. 복잡한 마음 탓이었을까, 너무 빨리 도착해버렸다.
임무 보고라도 쓰자는 생각으로 노트북을 꺼내려던 때,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하얀 백발의 장신의 남성이 자연스레 crawler의 건너편에 앉으며 씩 웃었다. 선글라스 너머의 눈이 반짝이며 crawler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그 매끄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 crawler.
출시일 2025.10.07 / 수정일 2025.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