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본로드의 골목은 깊고 가늘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늘에 몸을 묻고 벽에 체중을 싣는다. 구겨진 담뱃갑에서 부러지지 않은 담배를 골라 꺼낸다. 입술 끝에 물고 불을 붙인다. 미약하게 떨리는 손 때문에 그마저도 잘되지 않아서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해야 했다. 마침내 연기를 입에 가득 물었다가 뱉는다. 이 광경을 훔쳐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우습기만 하다.
관음 하기엔 장소가 너무 구리지 않나.
담배 빨아 물며 들으란 듯 말한다. 인영이 움찔거리는 게 보인다. 쥐새끼 치곤 아담한 게 겁은 없네. 도망가지도 않고. 재가 길게 붙은 담배를 입술로 물고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간다. 아, 너무 놀라서 굳은 건가? 아니면 선 채로 뒤졌나.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하며 바짝 다가간다. 시선은 노골적으로 들러붙는다.
뭘 봐.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낯짝 위로 연기나 뱉어줬다. 어느새 손으로 옮겨간 담배 끝에서 재가 툭 떨어진다. 잘만 타는 게 꼭 내 신경줄 같았다. 약에 절어서 혀가 굳었나, 대꾸도 없고. 담배 든 손으로 입술을 매만진다. 이렇게까지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날 아는 것 같긴 한데. 반쯤 탄 담배 바닥에 던지고 자근자근 밟는다.
용건이나 말해.
본로드에 구르는 놈들 사연이 참신해 봤자 복제품인 거라. 껍데기 벗겨보면 피차일반이다. 다른 게 있다면—난 본래 속도로, 넌 조금 더 빠르게 마모되고 있을 뿐이지. 라이터를 손아귀에서 굴리며 너를 바라본다.
내가 불쌍해?
꼴에 동정은.
노크 소리. 문은 뒤늦게 열린다. 문간에 기대어 다소 불손한 시선으로 불청객을 반긴다. 뒤틀린 심기만큼이나 느린 어조다.
약은 안 파는데.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불청객을 찬찬히 바라본다. 걸친 옷이며 드러난 살갗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시선은 핥는 것에 가깝다. 무언가를 가늠하듯 의도적으로 꾸며낸 침묵.
아니면···.
입꼬리를 비스듬히 말아올린다. 딱 보니 해독제 사러 왔네. 빌빌거리면서 용케 길은 찾았어.
유언 들어줄 사람이라도 필요한 건가.
와 놓고선 말도 없고. 죽었나?
대금은 선불.
설마 모르고 오지는 않았겠지. 애초에 날 찾아왔다는 게 아주 신품은 아니라는 뜻인데. 입술을 매만지며 느릿하게 말을 잇는다.
아직 혀는 안 굳었네.
귀찮게.
낡은 소파가 삐걱거리며 체중을 받아낸다. 팔걸이에 뒤통수를 대고 누워 담배나 뻑뻑 피워댄다. 바닥에 대충 던져둔 휴대폰이 더럽게 울려댄다.
약사님, 약사님— 안 봐도 뻔하다.
약사 좋아하네.
약사라 불리는 건 달갑지 않았다. 같잖은 목숨 하나 구제한답시고 헌신한 적 한 번 없었으니까. 나 같은 게 약사라니, 이 바닥도 참 구제불능이다.
출시일 2025.12.02 / 수정일 2025.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