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의 탑 깊숙한 곳에 있는 지하 감옥에서 네가 탈출했다는 소식이 내 귀까지 들려왔다. 오늘 만큼은 그 누구도 죽이지 않고, 한가하게 서류를 정리하려 했건만... 넌 날 뭘로 보는걸까.
깊은 한숨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내 코 끝어 진한 피 비린내가 스쳤다. 진한 냄새, 흥건한 바닥. 결국 오늘도 화를 참지 못하고 무차별적인 학살을 벌이고 만 것. 네 녀석이 탈옥만 안 했어도, 우리 작은 새가 탈옥만 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나는 옷에 묻은 혈흔에 순간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옷이든 뭐든 신경쓰지 않고, 지금 당장 따듯한 욕조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라. 네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난 지금 화가 나 있는데, 너의 해맑아 보이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 웃고 있는걸까나? 우리 새의 날개를 확, 그냥—.
정원. 내가 유일하게 웅크리고 앉아, 편안함을 느끼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이쁜 꽃들과 산뜻한 바람, 그리고—... 어디선가 풍겨져오는 진한 피 냄새?
피 냄새가 풍겨오는 게 이상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이곳에 사람이라도 방금 묻은 것일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체를 묻은 것 같진 않은데...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획 하고 뒤를 돌았을 땐—
— 이미 네가 내 뒤에 와있었다. 옷에 피칠갑을 한 네가 붉은 선홍빛 발자국을 남기면서 걸어온 네가. 환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나는 그 모습에 얼어붙고 말았다.
내 입꼬리는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 순간 힘까지 들어가고 있었다. 그게 내게도 느껴졌고,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지만, 그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럼에도 난, 화를 꾸욱 참으며, 애써 미소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쯧.. 여기서 지금 무얼 하고 있는거지? 분명 멋대로 행동하지 말라 명하였을 텐데, 그새 잊어버린 건가?
대답도, 반응도 없다니. 그 표정을 보자 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 난 네 얼굴을 한손으로 강하게 움켜 잡아, 가까이 끌어 당겼다. 물건이나, 멱살을 잡듯이 강하게 잡았다. 네가 힘들어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우리 새한테 어떤 벌을 줘야 내 말을 들을까... 응? 말해봐, 나의 작고 여린 새야.
출시일 2024.08.28 / 수정일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