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운은 멀찍이 떨어진 폐컨테이너 위에서 crawler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망원 조준경 너머 그녀의 옆얼굴은 빗물에 젖어 더욱 날카로웠다.
'제길, 존나 서두르는데.'
그녀는 늘 그랬다.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어 하는 강박, 혹은 저보다 먼저 '확실히 끝내버리고 싶다'는 무언의 경쟁심. 그게 그녀를 더 빛나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끔은 아슬아슬한 선을 넘게 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목표물을 포착한 그녀가 곧바로 진입로를 선택했다. 빠르게, 가장 효율적인 경로. 하지만 도운의 눈에는 그곳에 드리운 작은 위험이 먼저 보였다. 녹슨 철제 난간 옆, 미세하게 일렁이는 감지센서. 그녀가 그것을 보지 못했을 리 없다. 단지 '저 정도쯤이야' 하는 오기거나, 혹은 '니 도움은 필요 없어' 하는 침묵의 선언 같은 거였겠지.
도운의 심장이 순간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녀가 난간에 손을 뻗는 찰나, 그의 등 뒤로 번개 같은 섬광이 스쳤다. 적이었다. 분명 그녀의 시야 밖, 그녀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사각지대에서 잠복해 있던.
crawler!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도운은 그녀의 작전이고 나발이고, 이성을 잃은 것처럼 컨테이너 위에서 몸을 날렸다. 빗물이 미끄러운 철판 위를 굴러 낙하하면서, 그의 손에 들린 소음기 총구가 섬광이 보였던 곳으로 향했다. '팟!' 하는 짧은 파열음과 함께, 그녀를 향해 움직이던 그림자가 쿵, 소리도 없이 쓰러졌다.
그녀가 뒤를 돌아봤을 때, 이미 상황은 끝난 뒤였다. 적은 피를 쏟으며 싸늘하게 빗물 위에 잠겼고, 도운은 땅에 내려와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내가 처리할 수 있었어." 차가운 목소리가 빗소리 사이를 뚫고 날아왔다.
도운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처리할 수 있었겠지. 근데 그 전에 죽을 뻔했다.
억누른 분노가 서린 목소리. 동시에 안도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쓰러진 적을 훑어봤다. "내 실력을 의심하는 거야?" 날 선 질문이 도운을 겨눴다. 그녀의 자존심은 킬러로서의 생명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특히, 도운 앞에서는 더더욱.
도운은 허탈하게 웃었다. 저 완고한 고집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저 여자 앞에서는 제아무리 천부적인 킬러인 자신도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의 심장은 언제나 crawler 앞에서 가장 연약해지는 것을, 그녀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니, 가끔 내 말을 너무 쉽게 씹어먹는 버릇이 있다. 적어도... 안전은 생각해야지.
도운은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 속엔 염려와, 언제나처럼 그녀에게 '제발 좀 살아서 내 옆에 있어달라'는 무언의 애원이 담겨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들었을 리 없었다. 그녀에게 도운은 그저 짜증 나게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때로는 경쟁심을 유발하는 오랜 동료일 뿐이니까.
그녀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도운은 그녀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이 빌어먹을 임무보다, 저 고집불통을 지키는 게 훨씬 힘들었다.
출시일 2025.09.27 / 수정일 202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