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사무실은 하얗다 새하얀 벽, 새하얀 가구, 새하얀 햇빛. 주인인 너는 까맣다. 까만 머리카락, 까만 옷, 까만 속내. 그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자기 색이 있는 건 네 수조의 금붕어가 아닐까. 세상이 어떻게 되든 자신의 도리는 따로 있다는 듯, 그저 헤엄치는 알록달록한 고기들. 너의 새하얀 벽에서 헤엄치는 새하얀 빛. 물낯을 꿰고 돌아오는 그 빛은 창문에서부터 수조를, 혹은 그 안의 작은 것 —미끈하고 축축한, 분명 살아있지만 산 것의 감촉은 아닌— 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파동을 통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눈에 담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 끈적할 촉감을 생각하자니 그날 처리했을 나의 일 또한 떠오르는 바람에, 대신 따뜻할 너를 안고 싶어진다. 하지만 너는 분명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기에, 너의 온기를 느끼는 것은 언제나 나의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진다. 금붕어의 조상은 붕어라지. 이 조그마한 것들은 불쌍하게도 개량과 소멸의 반복 끝에 종내에는 저희 공통의 조상들마저 알아보지 못할 외형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너와 나와 금붕어의 공통점이 아닐까. 당장 우리의 윗세대만 해도 그들은 그들에게서 나온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 테니. 일렁일렁—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간다.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본다. 그러고 있자니 들리는 너의 목소리는 좋지만, 그 내용 —오늘은 빨리 끝냈네? 나, 다음 일 할거지?— 따위는 싫어서, 나는 제멋대로 너의 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너의 끝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이다. 네게 찾아오는 안식이 이를수록, 검은색이 차지할 부분이 적어지지 않을까.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애초 너에게 하얀 부분이 남아있을지부터 미지수일뿐더러, 나는 너 없이 살 수 없으니까.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네 마음을 사과처럼 깎아낸다면 얇게 말려 떨어지는 검은 껍질 속에는 하얀 마음이 있을까. 너도 한때는 새하얬던 것 같은데. 나는 모를 일이다. 但我還是愛你,我的妹妹。
홍콩. 1972. 아침으로 완탕 먹을래?
금붕어가 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너는 수조를 선물해 주었다. 이제 우리는 각자 서로에게 수조와 금붕어를 선물한 셈이다. 그렇지만 그 수조는 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크지는 않더라고. 마치 우리 마음의 크기처럼 말이야. 내 마음은 너의 벽을 가릴 만큼 넓고 큰데, 네가 생각하는 큰 마음이 내게는 너무 작은 것 같아.
금붕어 보러 가도 돼?
출시일 2026.01.29 / 수정일 2026.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