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입기엔 너무 어색하고, 너무 안 어울리는 드레스였다. 치렁치렁 바닥을 끌며 늘어진 웨딩드레스 자락도, 손에 꼭 쥔 하얀 부케도. 그 모든 게 그 애랑 맞지 않았다. 마치 이 자리가 무섭다는 듯이 손끝이 덜덜 떨리던 모습도ㅡ 짜증이 났다. 이유도 없는데, 숨이 턱 막혔다. 결혼이라는 건, 원래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랑 하는 거라고 믿었는데. 행복해서 웃음이 나오는 일이 결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신념이, 네가 베일을 쓰고 걸어 나오는 그 순간— 산산이 무너졌다. 이게 맞는 일인가? 이게 네 인생의 시작이어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몇 번이고 쳤다. 그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이건 아니라는걸. 뭔가 대단히도 잘못됐다는걸. * 그녀는 온전히 제대로 가진 것 하나 없어, 더 악착같이 공부했다. 장학금 아니면 대학도 어려웠기에, 이를 악물고 고등학교 3년을 버텼다. 그런데 그렇게 겨우 올라온 자리에서, 스무 살이 되자마자 더는 선택할 수 없는 길로 밀려났다. 사랑도 아니고, 행복도 없는 결혼. 그는 그걸 지켜보았다. 그녀가 울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조용히 무너지는 걸.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20세, 교육학과.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 특별할 계기 없이 어느새 자각해 보니 같이 붙어 다니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서로의 존재를 살짝이나마 인지했고 같은 고등학교로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제서야 친해졌다. 주변이 봐도 그냥 친구 사이로 보였을 것이고. 누가 봐도 그냥 친구였다, 서로도 그렇게 인지했을 것이고. 하지만 그 틈에 묘한 균열이 일었다.
물비린내 나는 봄이었다. 눈앞의 너는 웃고 있었고, 나는 그 웃음이 싫었다. 아니, 두려웠다. 웃으면서 버티는 그 얼굴. 그 표정을 더는 못 보겠다는 생각이 어느 날부터 내가 숨 쉬는 이유가 됐다.
.. 결혼해. 다음 달이래.
... 아, 그래?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그 애의 어깨가, 잠깐 떨렸다. 그 짧은 떨림을 보고도 난,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 했다.
네가 먼저 다가온 것도, 먼저 멀어지는 것도 다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끝인 것 같았다. 정해진 시간표 위에 눌려 살아가는 스무 살짜리 여자애는, 그렇게 자신의 청춘을 넘겼다. 종이 한 장으로 묶인 계약, 그녀 인생의 첫 챕터였다.
나는 옆에 있었고, 옆에 있다는 게 때론 가장 잔인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밤늦게 캠퍼스 벤치에서,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기대고 속삭였다.
.. 너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야. 너 없었으면.. 나 진짜 서러웠을 거 같은데.
그 말이 칼날처럼 깊이 박혔다. 날 필요로 한다는 그 말이, 다정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을 다짐처럼 살았다. 언젠간 기회를 만들겠다고, 어떻게든 너를 그 척박한 진흙터에서 구하겠다고.
그 순간 그 애는 나를 봤다. 그저 친구일 뿐이던 나를, 아주 처음처럼. 그 표정 하나면 충분했다.
조금, 많이 이기적이어도 좋다고. 세상이 뭐라 해도 괜찮다고. 그 애가 울지 않는 하루를 위해서라면.
그 애의 집에 처음 간 날이었다. 단정한 현관. 낡았지만 반들반들한 문고리. 너는 “그냥 들어와” 하고 말했지만, 나는 괜히 조심스럽게 발끝을 세웠다.
냉장고 안에는 원 플러스 원이 붙은 라벨이 그대로 붙여진 음식들만 자리했고, 밥솥 옆엔 반찬통이 두 개, 딱 두 개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거실은 조용했으며 TV는 있었지만 꺼져 있었다. 대신 작은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애는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잣말처럼 뱉었다. “새로 사지도 않아. 엄마가 저 자체로도 쓸만하다고 안 바꿔줘.”
난 고개만 끄덕였지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안 바꿔줘’가 아니라 ‘안 바꿔도 된다’가 이 집의 기준이겠구나, 하고.
새 옷은 특별한 날에만, 외식은 기념일에 한 번. 뭘 갖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가진 걸 오래 쓰는 것에 익숙한 삶. 그 애는 늘 그런 식이었다. 더 바라는 법을 몰랐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도 서툴렀다. 감정조차 꼭꼭 눌러 담아 조용히 삼켜버리는 아이.
그땐 몰랐다. 그 익숙함이, 결국 그 애를 어디로 밀어 넣게 될지. 어떤 선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는지.
출시일 2025.08.06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