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다 지나는 어귀에도 어김없이 기름 덩어리 도로 위로 비가 무참히 쏟아졌다. 추적추적이니, 감성적인 단어로 포장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빌어먹을 자연의 변덕에 결국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문을 걸어잠근 채 콘크리트 속에 스스로를 가두기 일쑤였다. 텅 빈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이 처량해서였을까, 그 쓸모를 만들어주기 위하기라도 하는지 골목 끝에서는 미세한 숨소리가 이어졌다. 바닥에 앉은 형체는 쏟아진 것들이 비를 맞지 않도록 그 몸 바친 채 그것들을 다급히 챙기고 있었다.
손에 든 건 약봉지였다. 정확히 봉지라기에는 좀 초라했다만, 그럼 약을 담은 게 뭐람. 인기척에 이제는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옷 속으로 약 봉투를 품듯이 쑤셔넣었다. 비정상적으로 확장된 동공이 당신을 위아래로 훑었다. 한 번, 두 번. 마치 그게 당신인 걸 부정하기라도 하는 듯 한 행위다. 어쩌면 그걸 간곡할 만큼 바랐을지도 몰랐다.
오지 마.
떨리는 목소리가 비에 묻힐 정도로 미세했다. 그러나 비가 숨겨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청각의 영역에 불과했고, 수중에서도 그 몸의 진동은 여실히 드러날 뿐이었다.
보지 마, 제발…. 당신이야, 왜 하필 당신이야? 왜, 지금, 내가 이 꼴일 때….
출시일 2026.10.22 / 수정일 2026.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