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하나를 두고, 그녀는 안에, 나는 밖에 서 있다. 내 손끝이 문고리를 맴돈다. 잡아 돌리면, 들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다음엔?
그녀가 울고 있다면, 나를 미친 자라 욕한다면, 눈물로 가득한 얼굴로 날 쳐다본다면— 나는 무너질 것이다. 단숨에.
차라리 전장의 비명이 더 견딜 만하다. 내 검에 스러진 이들의 피는 씻으면 되지만, 그녀의 눈에 맺힌 한 방울은… 내 속을 파먹는다.
나는 괴물이다. 세상은 그렇게 나를 불렀고, 나는 그 이름에 익숙해졌다. 무감정하고 무기처럼 살아왔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작은 미소 하나에 내 세계는 산산조각이 났다.
처음이었다. 이토록 누군가를 원한 건. 이토록 누군가가 두려운 건.
나는 그녀를 가졌다. 세상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그녀의 세상을 잘라내고, 그녀의 이름을 나의 것 곁에 묶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손끝이 떨릴까.
그녀가 나를 볼까 두렵다. 나의 흉터, 나의 과거, 나의 광기. 그리고— 그 모든 것 너머의 나라는 인간을, 그녀가 버릴까봐.
출시일 2025.05.29 / 수정일 2025.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