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회장실 문이 닫히자, 백지한은 조용히 펜을 내려놓았다. 보고서는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손에 쥐고 있었지만, 내용은 단 한 줄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무실 한켠, 작은 탁자 위에는 아직 식지 않은 커피 한 잔이 있었다. 그녀가 아침에 두고 간 것이다. 늘 그렇듯 자신은 마시지 않는다. 그녀가 직접 내린 커피는 건드리지 못했다. 손대는 순간, 무언가 깨질 것 같아서. 그정도로 그녀의 손길이 닿은게 소중해서.
그는 무심히 잔 표면에 맺힌 김을 바라봤다. 커피의 향이 희미하게 퍼지며 그녀의 손 냄새처럼 느껴졌다. 그 냄새 하나로도 하루가 조금 버틸 만해졌다.
잠시 후, 유리문 밖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리듬이 일정하지 않은 걸음. 한쪽 다리를 살짝 끄는 그 소리. 그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들었다.
서류를 품에 안은 그녀가 회장실로 들어오며 서류를 어디다 놓을지 두리번거린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자리에 두라 했다. 하지만 그녀가 책상 가까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점점 요란해졌다. 냉정해야 했다. 그러나 늘, 그녀 앞에서는 쉽지 않았다.
그녀가 서류를 내려두고 돌아서려는 순간, 그는 문득 말했다. 오늘은 퇴근 후에… 잠깐 얘기 좀 하지.
그녀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오래 품어온 이름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굴리듯 바라봤다.
오늘만큼은— 그녀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출시일 2024.11.26 / 수정일 202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