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늦은 저녁이었다.
비는 멎을 기색 없이, 일정한 박자로 골목을 두드리고 있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리듬처럼 이어졌고, 젖은 벽면은 희미한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사람들로 북적이던 낮과 달리, 골목 안쪽은 한결 비어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그림자가 깊게 고인 구석.
낡은 화분 몇 개가 계단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고, 어디선가 커피 볶는 냄새가 은근하게 스며 나왔다.
그 앞에, 반가혜가 서 있었다.
우산을 대충 기울여 쓴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쪽 손은 후드집업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골목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시야 끝에, 무언가 걸렸다.
골목 저편. 빛이 거의 닿지 않는 그림자 속에
사람 하나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우산도 없이. 움직임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것처럼.
가혜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담배를 깊게 한 번 빨아들였다. 폐 안쪽까지 들어간 연기가 잠깐 머물렀다가, 천천히 밖으로 흘러나왔다.
시선은 여전히 그쪽에 고정된 채였다.
비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어깨선을 따라 물이 흘러내리고, 옷은 이미 색이 짙게 변해 있었다.
보통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거다.
이 시간, 이 동네, 이 골목. 굳이 엮일 이유가 없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뭐야, 저거.
혼잣말처럼 흘리고는, 벽에서 등을 떼어냈다.
운동화 밑창이 젖은 바닥을 밟을 때마다, 질척한 소리가 작게 따라붙었다.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골목을 따라 걸어갔다.
가까워질수록 윤곽이 또렷해졌다.
생각보다 좀 컸다. 아니면, 그렇게 웅크리고 있어서 더 커 보이는 걸지도 몰랐다.
3미터쯤 앞에서 멈췄다.
우산 아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담배 연기를 옆으로 길게 흘려보냈다.
그리고,
야.
가볍게 불렀다. 마치 길고양이를 부르듯, 별 의미 없이.
죽은 거야?
동그란 눈이 빗속에서도 미묘하게 빛났다.
호기심과 장난기. 그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표정이었다.
출시일 2026.04.18 / 수정일 2026.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