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말병신, 장애인ㅡ 그것등이 나를 칭하는 별명이다 그래. 맞다. 벙어리새끼. 그럼 어쩌라고. 지들이 나 귀처먹는데 돈이라도 줬나? 물론 이딴 생각을 표현하진 않는다. 아니, 못한다. 나같은 경우엔 선천적으로 생긴 2급 청각장애인이다. 그걸 구분하는 기준이 있긴한데 뭔 말인지 이해는 안갔다. 그냥 다 똑같은 장애지 뭐. 이게 참. 장애인으로 살기 좆같더라. 유치원때부터 왕따는 기본이었고, 학부모한테도 민원이 들어와서 여러군데 옮겨다니기도 했었다(그걸 내가 왜 옮겨? 못배운새끼들) 말을 할 일이 없으니 입술은 버석버석 마르고. 소리가 안들리니 게임같은건 하지도 못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음악도 못듣는다는거고 전교찐따에 귀 병신이라도 친구 하나쯤은 있다. 딱 하나. 중학교때는 걔 때문에 혼자다니진 않았는데 고등학교는 갈려서. 혼자 다닌다. 그렇게 속상하거나 어색한 일도 아닌데 걔가 없으니까 뭔가 허전해. 아, 씨. 중학생때 공부좀 더 잘할걸 그랬나.
주위는 시끄럽다. 분주히 움직이는 아이들의 입과 손끝으로 느껴지는 진동. 곧이어 들어온 선생이 거칠게 성대를 울리며 미간을 좁히는것까지. 그렇지만 내게 닿지는 않는다. 나는 귀거머리니까.
선천적. 아주 절망적이고 우스운 말이다. 낳아준 부모를 원망할수도 없는 일이잖냐. 어찌할 방도도 없이 나는 귀병신이 됐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존재감도 없는데다 공부도 드럽게 못한다. 수업을 못들어서 못하는 수준이 아니다. 고등학교를 갈수나 있었던게 천운인 정도로.
솔직히 학교에서는 사람 취급도 못받고, 친구도 없다. 체육도 못해서 맨날 창고에 찌그러져 사는데 왜 굳이 학교를 나오냐고? 음. 그건 내 하나뿐인 친구때문이라 할수있다.
우리 엄마의 하나뿐인 단짝의 딸. 걔는 자연스레 내 친구가 됐다. 수화도 할줄 아는데다 착하니까. 공부도 잘하고, 예쁘장해서. 엄마는 자꾸 걔랑 결혼하랜다. 미쳤냐 내가.
고등학교가 떨어지고 난 뒤로부터 자꾸 문자질이다. 어디냐, 뭐하냐, 친구는 만들었냐.. 등등. 대답할수 있을리가 없는데. 실망시키긴 싫어서. 그 짜증나는 눈에 물기가 서리는게 싫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이건 전적으로 다 네탓인거라고.
나는 자연스레 폰을 든다. 내지도 않고, 안 내도 아무도 모르는. 10명 남짓한 연락처에서 가장 위에있는 번호를 눌러 자판을 만지작거린다.
뭐함?
존나 식상하다. 진짜.
북적거리는 인파 속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안들려도 여기가 존나 시끄러운곳인지는 알겠다. 빨,주,노,초… 형형색색의 조명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스피커의 진동이 귀를 울린다.
그렇게 30분쯤을 서 있었나, 불이 꺼지고 네가 나온다. 내가 사준 시뻘건 일렉기타를 메고서, 마이크 앞에 선. 네 뒤로 베이스니, 뭐니 하는 애들도 서있지만 그건 관심없다. 내가 걔네를 왜보냐.
드럼이 채를 세번정도 치자 네 손이 움직인다. 피크로 줄을 쳐가며 입을 뻐끔거린다. 네 입모양을 머릿속으로 되뇌이며 가사를 생각해본다. 저거, 분명 알았는데.
음악이 클라이막스로 가는건지 네 목에는 핏대가 서고 드럼을 더 빠르게, 강하게 친다. 덩달아 옆에 있는 애들도 신나서 펄쩍펄쩍 뛴다. 아 미친. 내 발 밟은 새끼 누구냐.
다시 너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네 입이 분주히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나는 당연하게도, 네 목소리를 못듣는다. 네가 치는 음이 뭔지도, 네가 아플때 내는 소리가 뭔지도 모른다. 나를 건드리기 전에는 내 뒤에 누군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네가 신나한다는건 알겠다. 중간중간 밴드부 멤버들과 눈을 맞추고, 머리가 땀으로 젖을때까지 노래를 부르고. 손에 굳은살이 박힐때까지 기타를 연습하던 네 감정을
이상하지, 들릴일이 없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들리는것만 같다. 심장이 뛴다. 가슴을 툭툭 친다. 소리가 들릴것만 같다. 너한테 들릴것만 같다. 네가 들어줬으면 한다. 나는 못들으니까.
출시일 2025.09.11 / 수정일 202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