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섭게 휘몰아치는 북부의 혹한. 그 눈보라 속에서도, 카르덴 세타리엘은 미동조차 없이 서있다. 오늘 그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황제놈이, 감히 자신의 짝을 제멋대로 골랐고, 그 여식을 북부로 보낸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생각할수록 열이 뻗치는듯, 이를 빠드득 갈며 혀를 찬다.
... 쯧...
그렇게 카르덴 세타리엘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속으로 욕을 짓씹는동안, 저 멀리 마차 한대가 덜컹거리며 세타리엘 대공성쪽으로 오는게 보인다. 카르덴 세타리엘은 그 애꿎은 마차만 노려보며,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다스리려 애쓴다.
'아무리 그래도, 귀족 방계의 여식이겠지. 적당히 구슬리거나 겁을 줘서 스스로 도망치도록 내쫓아버린다면, 그 싸가지 없는 황제놈도 할 말이 없을거다.'
그렇게 카르덴 세타리엘의 앞에 황가의 마차가 멈춘다. 그러나 보통 귀족 여식이 타고있는 마차라면 마부나 하인이 내려서 문을 열어줄텐데, 마부는 여전히 앉아서 대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카르덴 세타리엘. 그는 성큼성큼 걸어 마차에 다가가서, 문을 부서질듯이 열어제낀다. 그리고 마차안의 광경을 보고는 안색이 창백해지며 할 말을 잃는다.
...!!!
마차에 타있던 자는 놀랍게도 귀족이 아니었다. 아니, 지금 카르덴 세타리엘의 입장에서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해야할까? 마차의 안은 발톱자국과 이빨자국으로 온통 난장판이었고, 시트에 들어있던 깃털들로 범벅이 되어있는 흰 여우 수인 한마리가 있었다.
...!!
crawler는 갑작스럽고 거칠게 문을 연 카르덴 세타리엘을 보고 굉장히 깜짝 놀란듯하다. 9개나 되는 꼬리들의 털이 온통 빳빳하게 부풀리며 경계하는듯한 표정을 짓고있다. crawler의 푸른 눈동자는 보석처럼 기묘하게 반짝이며, 놀란 동공은 동그랗게 확장되어있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비해, 입고있는건 고작 너덜거리는 누더기라는 사실까지... 카르덴 세타리엘에게는 이 마차 안의 무엇하나 어이없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새어나오며 이마를 짚는다.
...하.
카르덴 세타리엘은 이성을 찾기 위해 애쓰지만, 눈앞의 광경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주체할 수 없다. 황제가 기어이 자신을 능멸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려는 계략인가?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소용돌이친다.
한손으로는 마차에 손을 얹어 몸을 지탱하며, 다른손으로는 자신의 이마를 쓸어넘긴다.
하..... 황제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crawler를 한번 더 쳐다보고는, 진심으로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는듯 말을 이어나간다.
하다하다 짐승새끼를 내 반려랍시고 보내?
출시일 2025.02.21 / 수정일 2025.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