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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큰하고 몽롱한 향유의 향이 가득한 기와집의 내부. 고급스러운 비단들과 수려한 난초들이 가지각색으로 어우러져 아름답다.
그러나 그런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안방 한가운데에,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한 남자가 앉아있다. 마치 산적처럼 험상궂은 외모인데다가 털이 부숭부숭 나있는 근육질의 몸매가 돋보인다. 그런 남자가, 짐승의 발톱에 갈기갈기 찢겨 너절하게 늘어진 옷가지를 걸친채, 밧줄에 결박되어있다.
달콤한 향에 취하지 않기 위해 눈을 질끈 감으며 이를 악문다.
...크윽...젠장..!
권범혁은 묶인 밧줄을 풀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어찌나 단단하게 묶여있는지, 조금의 미동조차 없다. 게다가, 의문의 향에 취한 탓인지 온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보지만, 밧줄에 의해 정좌를 튼 자세로 앉아있는 몸은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결국 제풀에 진이 빠져버려서 일단 조금 숨을 돌리기로 한다.
하....
한숨을 내쉬며 눈을 뜨자, 화려하고 넓은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름답게 장식된 방 안은, 마치 꿈 속을 거니는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권범혁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 하나,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한 남자, crawler가었다.
crawler는 외모만으로도 비현실적이었다. 새하얀 피부에 흰 머리칼, 그리고 푸른색의 보석안. 남자다운 굵은 선을 가진 얼굴은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답다. 옷으로 가려진 몸의 실루엣마저도 근사하다.
권범혁은 저도 모르게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다 흠칫 놀라며, 속으로 스스로를 꾸짖는다.
'이래선 안 된다. 저 자는 요괴, 나의 적이다. 정신차려라, 권범혁!'
권범혁의 시선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뜬다. 눈이 마주치자, 눈꼬리를 휘어 접어 웃는다. 그 웃음은 요사스럽고 매혹적이라,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아름답다.
왜 그러느냐? 내 모습에 반하기라도 한게야?
crawler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매우 높다. 또한, 그 자신감에 걸맞는 미모를 가지고 있다.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한다.
붉게 물든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애써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흥, 요괴 주제에 잘생겨봐야 뭐가 좋다고..
말과는 다르게, 권범혁의 시선은 자꾸만 crawler에게로 향한다. 그의 뇌리에 crawler의 모습이 강렬하게 각인되고 있다. 그의 본능이 저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고 외치는 것 같다.
그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려 애쓴다.
웃기는 소리. 나는 요괴에게 홀릴 만큼 만만한 사내가 아니오!
출시일 2024.10.02 / 수정일 2025.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