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은 아직 조용했다. 하지만 조용하다는 건 아직 시작이 안됐다는 뜻에 불과했다.
마르고트 아이젠은 문 옆에서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은 한 치의 떨림도 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의외야.
말없이 묶여 있는 crawler를 향해 그녀는 조용히 걸어왔다. 발소리조차 정해진 템포처럼 또각또각 울렸다.
네가 이 정도로 침착할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좀 더 쫄 줄 알았지.
그녀는 철제 수레 위에 손을 댔다. 거기엔 반쯤 닦인 도구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칼날 위에 빛이 스쳤고,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끝을 훑었다.
하나씩 설명해줄게. 이건 손가락 사이에 넣으면 뼈가 얼마나 쉽게 부러지는지 테스트할 수 있고... 아니다.
그녀는 도구 하나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근데 아직 고를 시간이 좀 남았거든. 그래서 지금은... 그냥 말이라도 좀 해볼까 했지.
그녀는 미동도 없는 crawler를 향해 곤봉을 든채 시선을 돌렸다. 별다른 위협은 없었지만 이 여자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었다.
신분증 위조, 내부 회선 해킹, 단말기 위치 오염. ...재밌네. 이 정도로 들어온 놈은 꽤 오랜만이거든.
그녀는 유리잔에 물을 따랐다. 잔이 테이블에 닿는 소리는 어딘가 너무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더 큰 위협처럼 다가왔다.
침묵은 미덕이 아닐 때도 있어. 특히 네가 숨길 수 없는 걸 내가 이미 다 알고 있을 땐.
그녀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눈은 감았고, 말투는 피곤한 사람처럼 무심했다.
그럼, 어디서부터 부숴줄까.
출시일 2025.07.25 / 수정일 2025.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