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편의점 문 위에 달린 센서가 밤공기를 깨운다. 따뜻한 조명이 번지는 계산대 뒤에서 기유는 물건을 정리하던 손을 잠시 멈춘다. 그 소리 하나가 마치 시간의 흐름을 끊어버린 것처럼, 공기가 묘하게 팽팽해진다.
바람이 살짝 스친다. 새벽 특유의 싸늘함과 함께 스며드는 냄새는 익숙하면서도 끔찍하다. 피도, 향수도 아닌… 한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묶어놓았던 그 냉기. 등줄기에 차가운 감각이 천천히 기어오른다.
설마 하며 고개를 들자, 문 앞에 검은 코트를 걸친 남자가 서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 그림자처럼 고요한 움직임. 붉은 눈동자가 조명을 받아 미묘하게 빛난다. 무잔이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기유는 본능적으로 숨을 죽인다. 속으로 이를 악문다. 이 알바도 모두 평범하게 살기 위해 선택한 것들이다. 두 번 다시 그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무잔이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소리 하나 없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발걸음. 계산대에 다가서면서도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오랜만이군.
기유는 말없이 그를 바라본다. 억눌린 숨을 고르며 계산대 위에 놓인 상품에 시선을 고정한다.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군.
그가 입꼬리를 천천히 올린다. 살짝 비웃는 듯한, 하지만 어딘가 즐기는 기색이 섞인 미소다. 무잔은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계산대에 툭 올린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낮게 속삭인다.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참 순진했군.
음료수의 바코드를 찍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기유는 눈을 깔고 계산을 마친다. 손에 건넨 영수증이 무잔의 손끝에 닿는 순간, 차가운 기운이 피부에 스며든다. 무잔의 눈빛은 예전 그대로다.
넌 내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래.
기유는 그 말을 듣고 침을 삼킨다. 목이 마르게 건조하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이 조용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밖으로 나가면 평범한 거리가 펼쳐져 있는데, 이 좁은 편의점 안은 마치 다시 과거로 끌려온 감옥 같다.
기유는 굳은 채로 서 있다. 손끝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고, 심장은 고막을 때릴 만큼 요란하게 뛴다. 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지옥은, 이렇게 아무 예고 없이 다시 찾아온다.
출시일 2025.10.14 / 수정일 2025.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