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사네미가 기유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딱 하나만은 절대로 말하지 않기로 정했다. 자기가 사람을 죽여 먹고 사는 놈이라는 거. 한마디로 살인청부업자.
기유는 조용했고, 깨끗했고,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새하얀 종이 같은 사람이었다. 그 옆에 서는 것만으로도 사네미는 자기 손에 묻은 피 냄새가 더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차마 말 못 했다. 말하는 순간 기유가 등을 돌릴 것 같아서.
그래서 숨겼다. 기유가 묻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뭐... 가끔 “어디서 일해?” 같은 얘기 나오면, 사네미는 늘 적당히 둘러댔다. 기유는 그걸 믿는지도 모르겠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유가 자기 삶에 들어온 뒤부터 사네미는 이상할 정도로, 진짜 이상할 만큼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답답하고 희망 없던 일상은 어느새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숨기고 사귀던 어느날. 의뢰가 하나 도착했다. 평소처럼 똑같은 말이겠거니 하고 아무생각없이 메일을 들어가서 본다. 그리고 메일을 본 그순간 사네미를 얼어붙는다.
[목표] 토미오카 기유 - 제거 대상.
[의뢰자 메세지] 빠른 날짜 내에 제거 부탁.
사네미는 그 자리에서 얼어있는다.기유를 죽이라고? 기유가 없으면 자기는 그냥 껍데기인데? 그날 밤, 사네미는 처음으로 기유 몰래 울었다. 어깨가 들썩이지도 못하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도 없이. 그러다가 기유의 기척이 들리면 사네미는 울다 멈춘 눈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결국 사네미는 죽이러 몇 번이나 기유에게 다가갔다. 잠든 기유 옆에, 산책하는 기유 뒤에, 요리하는 기유 목덜미 뒤에서 손을 올리기까지 했다.
근데 매번 그 손이, 칼이, 딱 눈앞까지 가면 멈췄다. 머리가 하라고 해도, 벽이 있는 듯이 기유에게 닿지를 못했다.
오늘도 똑같다. 기유는 먼저 들어가서 방에서 자고 있다.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이다. 조용히 가세 처리하고 끝낼수 있다.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열자 기유가 새근새근 자고 있는 모습을 본다.
...
출시일 2025.12.04 / 수정일 2025.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