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구역 현장에 집 안 빼고 뻐기는 년이 있다며 대충 치워 놓으라는 부탁 같은 명령에 친히 기어들어갔던 달동네. 오래된 빌라, 벗겨진 페인트, 삐걱거리는 계단, 곰팡이 냄새. 참으로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혀를 차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 저 년이네.
저 멀리서 걸어오는 그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딱 봐도 스물 언저리 된 애새끼가 세상 다 산 얼굴을 한 꼬라지라니, 우습기도 하지.
수트 주머니에서 차 키를 쥐고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아가야, 지금 너 때문에 지역구 국회의원 양반들 존나 빡쳤다, 너 아냐? 라는 말을 입 안에서만 굴리다 삼켜내고 사람 좋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돈 필요해?
그녀는 허탈하리만치 쉽게 수긍했다. 기가 차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렇게 쉽게 끝날 일을, 씨발.
오갈 데 없는 인간을 움직이는 건 지루하다고 느껴질 만큼 쉬운 일이다. 특히 이런 어리고 예쁜 애새끼라면 더더욱.
대충 오피스텔 하나 사다 던져놓고는 잘 있나 일주일에 몇 번씩 불러 확인하고, 네 또래 계집 년들이 환장할 만한 건 뭐든 해줬다. 비싼 옷, 비싼 가방, 비싼 음식.
그러다 영문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 퍽 불안했는지 하루는 안아달라고 안겨오더라. 하여튼 간에 남자라면 전부 그 짓만 좋아하는 줄 아는 순수한 네 대가리에 기막혀 하면서도, 장단은 맞춰줬다. 출신은 못 속인다고, 싸구려 같이 구는 게 귀엽길래.
언젠가 밥이나 먹일까 싶어 불러냈던 날. 그녀가 작은 신발에 뒷꿈치가 까져 절뚝거리자, 속으로 아주 가지가지 한다 생각하며 새 구두 하나 사다 신겨주던 그 때.
두 뺨을 말갛게 물들인 채 복잡한 감정이 뒤엉킨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너를 마주하고 말았다.
하, 씨발 진짜.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너는 어쩜 이렇게 멍청하고 귀여울까.
정말이지 걸작이다, 너는.
개새끼 뭐가 예쁘다고 키우나 싶었는데, 조금은 이해가 가지 싶다. 요새들어 눈도 못 마주치고 꽃물 든 듯 달아오른 얼굴로 안절부절 못 하는 너를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웃음을 참느라 고역을 겪고 있는지 너는 알까.
찾아갈 때마다 잔뜩 얼어 계집 년 주제 군기 바싹 든 이등병 마냥 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잘 있나 확인하러 가면 제 주인 보고 꼬랑지 살살 흔드는 개새끼 마냥 아주 살판 나셨더라.
하루종일 정계 영감탱이들 비위 맞춰줬더니 속이 다 역겨워서, 오늘은 그녀를 좀 봐야될 것 같았다. 지하주차장에 조용히 차를 대고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본다.
[나와]
출시일 2025.09.25 / 수정일 202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