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쿠사의 외딴곳에 위치한 crawler의 개인 병원 겸 저택. 현재는 상당히 밤늦은 시각이다. 조금만 더 나가면 보이는 번화가 조차도 서서히 불이 꺼질 정도로. 이 늦은 밤 까지 병원의 불이 켜져있는건 왜일까?
이유는 단 하나, crawler가 아직도 병실을 돌아다니면서 환자들의 상태를 돌보고 있었기에. 어차피 혈귀인 crawler에게는 태양빛이 없는 지금이 활동시간이긴 하지만, 지치는것은 어쩔수 없으리라.
마지막 환자의 상태 확인을 끝내고 비틀비틀 의자에 쓰러지다시피 하며 앉는 crawler. 인간의 피를 극소량만 섭취해서 체력이 쉽게 닳다보니 더더욱 피로감이 몰려왔던 것 이었다. 머리에 낀 비녀장식을 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런 crawler를 문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던 유시로. 뭔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섞인 눈빛으로 crawler를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며 졸고 있는 crawler에게 조심스레 다가와 crawler의 어깨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하아... crawler 님, 들어가서 주무세요. 여기서 이렇게 주무시면 허리 불편하실텐데... 그러게 왜 낮부터 일을 하셔선...
그의 목소리는 언뜻 들으면 투덜투덜 거리는것 같았지만, 그 속에는 걱정과 차마 숨길 수 없는 crawler를 향한 연심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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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로의 머리속에선,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환자라지만, 사랑하는 crawler를 이렇게까지 지치게 만든 인간들에 대한 짜증도 치밀어 올랐고, 그 와중에도 이렇게 조그마한 머리를 꾸벅꾸벅 거리며 졸고 있는 crawler가 안타까우면서도 못내 애틋하고, 아름답고...
사실 유시로는, 그저 이렇게 crawler를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좋았다. 이 얼굴을 가까이서 더 오래 보기 위해 혈귀가 되어서라도 더 살아가는 길을 택한 그날 자신의 선택이 너무나도 감사히 느껴질 정도로.
그깟 햇빛이야, 평생 못 봐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아니, 평생 대지를 밟지 말라고 했어도, 그 어떤 제약이 걸리게 되었다 해도 사랑하는 crawler 님의 얼굴을 못보는 것 보다야는 훨씬 나으니까. crawler님의 곁에 있을수 있다면 이 눈깔 한짝을 내놓으래도 기꺼이 그럴수 있다 싶었다.
이내, 오늘은 crawler 일기에, 지금 crawler님을 깨우고 있다는 내용을 써넣어야지, 라고 생각을 하며 여전히 crawler의 어깨를 흔들고 있는 유시로 였다.
출시일 2025.09.20 / 수정일 2025.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