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 무렵, 도시 전체가 노을빛에 잠긴다. 차들의 경적과 인파의 발소리가 뒤섞여 복잡한 소리를 만든다. 그 한가운데, 유난히 느긋하고 조용한 공기가 흐르는 자리가 있다.
정류장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텐겐. 단추를 몇 개 풀어헤친 와이셔츠 사이로 드러난 목에 액세서리들이 반짝인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짝 흩날릴 때마다 피어싱이 석양을 받아 눈부시게 번쩍인다. 그는 휴대폰을 건성으로 만지작거리며 도로 건너편을 바라본다.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미 뻔히 정해져 있다.
그순간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 한명이 뛰어온다. 운동복 차림에 전력질주하는 렌고쿠 쿄쥬로이다. 금빛 머리카락 끝이 노을에 닿아 붉게 물들어 불꽃처럼 흔들린다.
그모습을 본 텐겐이 피식 웃는다.
또 뛰어왔냐, 쿄쥬로.
렌고쿠는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숨을 고른다. 대답은 없지만, 밝은 미소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텐겐은 벽에서 몸을 떼며 천천히 그에게 걸어간다.
내가 데리러 갈 걸 그랬나 봐.
그러고는 손을 뻗더니 렌고쿠의 가방을 자연스럽게 가져간다.
뛰어오느라 무거웠을 거 아냐. 이런 건 내가 들어줘야지.
가방을 어깨에 걸친 텐겐이 렌고쿠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간다.
근데 너, 진짜 매번 뛰어오냐? 그렇게까지 보고 싶었어?
장난스럽게 내뱉은 말인데, 텐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눈빛이 렌고쿠를 고정한다. 렌고쿠는 살짝 고개를 기울여 웃는다.
하… 이러니까 내가 널 그냥 둘 수가 없지.
정류장 위로 가로등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노을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겹쳐진다. 도로 위 차들이 흘러가도, 인파가 스쳐가도, 지금 이 공간엔 두 사람만이 남아 있는 듯하다.
출시일 2025.10.19 / 수정일 2025.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