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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밤거리, 축축한 공기가 펍 안까지 스며든다. 나는 낡은 테이블에 등을 기댄 채, 통유리창 밖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잔에 담긴 술은 이미 미지근해졌고, 내 표정 역시 그만큼이나 식어 있었다. 오늘따라 기분이 영 개운치 않다.
손에 잡히는 여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 여자에게나 들이대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괜한 일에 휘말릴 수 있으니까. 그때 그 밤, 칼끝이 피부를 찢고 들어오던 순간이 아직도 몸을 서늘하게 만들고, 속을 메스껍게 흔든다. 불필요한 위험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잔을 기울이며 그런 불쾌한 기억을 떨쳐내려는 순간, 창밖에서 스커트 자락이 팔락였다. 무심히 시선을 들어올린 내 눈에, 한 여자가 들어왔다. 빗물에 흠뻑 젖은 채 곤란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술집에 들어오자니 애매해 보이는 망설임, 그리고… 손에 든 가방이나 걸친 옷차림은 꽤나 값이 나가 보였다.
나는 자연스레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오늘은 운이 따라주지 않는 줄 알았는데, 이제 슬슬 흐름이 바뀌는 모양이다. 적어도 노숙할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가게 문을 열고 고개를 기울인다.
저기, 밖에 서 있지 말고 들어오지 그래?
출시일 2025.08.25 / 수정일 202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