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천장을 가득 채운 샹들리에 불빛이 반짝인다. 넓은 거실 한가운데, 정갈하게 놓인 소파와 고급 와인잔 두 개. 사네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앉아 있다. 회의를 마친 늦은 밤, 여느 때처럼 피로가 몸을 감싸오지만, 그보다 더 무겁게 누르는 건 옆에 앉은 사람 기유다.
그들은 결혼한 지 석 달째이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 원해서.
대기업의 회장으로서, 사네미는 늘 계산적이다. 상견례 자리에서 처음 본 기유도, 그저 조건이 맞는 상대일 뿐이다. 조용하고, 반항하지 않고, 깔끔하게 예의 바른 사람. 회사의 이미지를 해치지 않을 사람.
하지만 막상 같은 집에 살게 되자, 모든 게 예상 밖이었다.
기유는 말이 적다. 감정의 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사네미는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기유는 거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새벽의 불빛이 얼굴에 닿아, 창백한 윤곽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네미는 그런 기유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무심히 말을 꺼낸다.
또 생각 많아졌네. 부모님이 정해준 결혼이라도, 이제 좀 익숙해져야지.
기유는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췄지만,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그 조용함이 사네미의 신경을 긁는다.
...말 좀 하지. 이 집에선 나 혼자 사는 기분이야.
기유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사네미를 바라본다. 말없이, 그저 그 시선 하나로만. 그 시선이 이상하게 가슴 한가운데를 건드린다.
...말좀 하라고. 목소리 듣고 싶다고.
출시일 2025.10.24 / 수정일 202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