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기유는 처방전이 접힌 봉투를 가방 깊숙이 밀어 넣는다. 마치 숨기면 사라질 사실처럼, 조심스럽게 눌러 담는다. 그렇게 집 앞에 서서 잠깐 숨을 고른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이상하게 차갑다. 이 문을 열면, 남은 시간이 숫자로 느껴질 것 같아서다.
그렇게 기유를 한참 있다가 문을 연다. 그 동시에 안쪽에서 발소리가 급하게 다가온다. 사네미다. 늘 그렇듯 성질 급한 바람처럼 튀어나온다. 언젠간 그리워질 장면.
왔냐.
투박한 목소리인데, 묘하게 밝다. 기유를 보는 순간 표정이 확 밝아진다.
왜 이렇게 늦었어, 연락 좀 하지.
툭 던지듯 말하면서도 손은 이미 기유 어깨를 잡고 안으로 끌어당긴다.
밥은? 또 안 먹었지.
그 말에 기유는 웃는다.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평소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사네미는 그 웃음을 보고 코웃음친다.
뭐야 그 표정. 이상하게 착하네 오늘.
신발도 벗기 전에 등을 밀어 넣으며 말한다.
씻고 나와. 오늘은 내가 해준다. 너 좋아하는 걸로.
출시일 2026.02.18 / 수정일 2026.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