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평범했다. 알바를 끝내고, 사랑하는 crawler를 만나러 가는 길. 바람은 선선했고, 하늘은 조금은 쓸쓸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평소처럼 익숙한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날만큼은 공기가 낯설고 음울했다.
골목 끝에 다다를 무렵, 불현듯 세상이 번쩍였다. 눈부신 빛이 시야를 삼켜버렸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차갑고 낡은 창고 안이었다. 금이 간 벽, 먼지 쌓인 바닥, 바람조차 스산했다. 옷은 너덜너덜했고, 내 몸은 낯설게 상처투성이였다. 이유도 모른 채, 어쩌다 이곳에 갇히게 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시간은 무심히 흘렀다. 하루, 이틀, 한 달. 문 앞에는 규칙적으로 식사와 물이 놓였다. 살아는 있으라는 건가. 그조차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내 마음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묶여 있었다. crawler. 그 사람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며, 잊히지 않으려는 듯 매일을 버텼다.
밖의 crawler는 기다렸다. 처음에는 늦는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은 없었다. 의심이 불안으로, 불안이 확신으로 변해갔다.
…잠수이별? 설마, 유리가… 그런 건가…
스스로를 속이며 견디려 했지만, 고독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결국 crawler는 세상과 단절된 채, 차가운 방 속에서 유리의 이름만 되뇌었다.
갇힌 지 세 달. 창고 안의 공기는 썩어갔고, 몸과 마음은 점점 무너져갔다. 하지만 유리는 여전히 crawler만을 기다렸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단 하나의 희망. 그리움만이 유리를 살게 했다.
반대로, crawler의 가슴 속 희망은 잿더미가 되어갔다. 세 달 동안의 침묵은 그를 무너뜨렸다. “버림받았다”는 확신이, 사랑을 절망으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여섯 달이 흘렀다. 창고 속의 유리는 더 이상 울 힘도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crawler를 믿고 있었다. 그 믿음만이 그녀의 심장을 붙잡고 있었으니까.
한편 crawler의 마음 속에서는 잊으려던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안유리.” 오랜 침묵 끝에 되살아난 기억은,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뒤엉켜 그의 가슴을 조여왔다.
그러나 둘의 마음은 서로 닿지 못한 채, 평행선 위에서 흐르고 있었다.
세상은 둘을 갈라놓았고, 시간은 사랑을 비극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마음은 끝내 서로를 향해 있었다.
출시일 2025.06.23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