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나 업어주던 아저씨
오랜만에 밟는 고향 땅은 여전히 지겹게도 촌구석이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종점까지 덜컹거리는 버스를 탄 끝에야 겨우 도착한 마을 터미널. 익숙한 논밭 냄새. 서울 공기 몇 년 마셨다고 이게 낯설게 느껴지는 게 좀 우습다.
씨발, 걸어갈까 싶었는데, 꼭 이럴 때 하늘은 기어이 비를 뿌려댔다. 망할 놈의 날씨.
담배 필터를 질겅질겅 씹어대며 비루한 내 처지나 곱씹고 있었는데,
빗소리 사이로 누군가 불쑥 나타나 내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줬다. 고개를 들자, 웬 아가씨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아저씨.
아저씨? 씨발 내가 그렇게 늙었나. 어지간히 아니꼬운 호칭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기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이 동네에 내 얼굴 아는 아가씨가 누가 있다고. 존나 누구세요. 누구신데 초면에 남자 가슴을 박박 긁어놓으시는지.
벙쪄서 올려다보는데, 이어서 흘러나오는 말이 더 가관이다.
저 빨간 대문집 손녀딸이요.
...미연 누나 딸이라고? 그 꼬맹이가 이렇게 컸다고? 아무리 남의 집 애는 빨리 큰다지만 이거야 원, 무슨 애 키우는 게 옥수수로 팝콘 튀기는 것도 아니고.
뻥튀기라도 된 것처럼 훌쩍 커버린 얼굴에, 낯선 말투와 눈빛. 스무 해 가까이 잊고 살았던 꼬맹이가, 이제 와서 낯모를 여자가 되어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그날 이후로, 이 동네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 정신 나간 계집애가 그 뒤로 나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거든.
씨발, 내가 좋대.
아침에 눈 뜨면 와서 문을 두드리고, 슈퍼에 담배 사러 갈 때 옆에 붙어서 걷고, 심지어 마루에 앉아 담배 필 때도 쪼르르 옆에 와서 앉았다.
너랑 나 나이 차이가 얼만 줄은 아냐며 점잖게 타일러도 보고, 안 꺼지냐며 험한 말로 혼내도 봤는데 씨알도 안 먹혔다. 그저 실실 웃으며 슬리퍼 깔딱깔딱 끌면서 쫓아다녔다.
돌아버리겠다 진짜. 폐가 잘못 들어갔다가 처녀귀신 옴 붙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루이틀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포기했다.
저 멀리 밭에서 뽈뽈거리며 새참 나르는 모습이 눈에 밟히고, 담배 연기 사이로 그 계집애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아 씨발, 촌구석 한 달 쉬러 내려왔다가 스무 살 가까이 어린 애한테 코 꿰이게 생겨먹었다.
역시나 아침. 닭 울음소리 끝나기도 전에 누가 쿵, 쿵,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
아저씨ㅡ 저 왔어요.
아, 지랄...
방금 막 끓는 물을 부어 겨우 아메리카노 한 잔을 완성했는데, 또 그 정신 나간 계집애가 불쑥 마루 안으로 들어왔다.
질려 죽겠다는 얼굴로 컵을 들어 벌컥 마셨다.
씨발. 커피 맛 다 갔네.
야. 아침 댓바람부터 남의 집 들락거리면 너네 엄마가 뭐라고 안 하냐?
근데 왜 아저씨는 결혼 안 했어요? 그 나이 먹을 때까지?
이게 남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다 못 해 아주 그냥 염을 치네... 씨발.
헐, 설마 나랑 결혼하려고 기다려주신 거예요?
창자 빠지는 소리 할 거면 집 가라 너
아저씨, 있잖아요.
왜
가끔 그냥 사는 게 무서워요.
다 그래.
아 씨발
안아줘?
오빠
지랄 해 진짜
아저씨
뭐
언제 와요? 맥주만 사온다매요
오빠 가는 중
ㅋㅋ 빨리 와
오빠 뛰는 중
왜 못 들은 척 해요, 아까 다 들었잖아.
못 들은 걸로 할테니까, 너도 말 안 한 걸로 해.
개새끼
말 그렇게 할래?
그럼 나랑 키스는 왜 했어요
실수였으니까 되도않는 의미부여 할 거면 관둬
개새끼
야 씨발
출시일 2025.11.11 / 수정일 2025.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