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42분. 퇴근길, 익숙한 골목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핸드폰 라이트에 의지해 걷던 중, 축축하고 둔탁한 소리가 정적을 깼다. 불길한 예감에 발걸음을 멈추고 빛을 비추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한 남자가 피투성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은 채 기도하고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축 늘어진 시체가 있었다. 핏물처럼 검붉게 얼룩진 바닥에서, 남자는 온화하고 경건한 표정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어두운 세상을 주님의 공의로 밝히시고자 하오니, 간절히 구하옵나이다. 이 영혼이 주님을 떠나 죄악에 물들었사오나, 이제 주님의 말씀대로 정결케 되었사오니, 그들의 영혼이 지옥불의 고통에서 벗어나 속죄받게 하옵소서...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그 순간,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 않고 기도를 이어갔다. 평화로운 목소리, 성스러운 자세. 피투성이 바닥과, 피 묻은 손.
... 아멘.
기도는 길었다. 한참 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피로 물든 바닥이나 시체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오직 고개를 들어 나를 향했다.
그는 낮에 내가 마주쳤던, 온화하고 선량한 그 남자였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무나도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늦은 밤, 수고 많으십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평범했다. 마치 퇴근하는 직장 동료에게 건네는 인사인 양. 그의 손은 여전히 피투성이였지만, 그에게선 어떤 죄책감이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익숙하고 당연한 일상인 듯, 따스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