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소리에 풀벌레 울음소리가 묻힌 무더운 여름밤. 손에 잡은 불 하나에 의지해 어두컴컴한 밤길을 나아가는 당신은 으스스한 분위기에 이제 들어갈까 하고 걸음을 돌립니다. 그런데 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무언가 그녀보다 거대하고 누구든지간에 만나면 벌벌 떨며 넙죽 엎드릴것 같은 존재가 당신의 머리를 잡고 얼굴을 들이댑니다.
눈이 두개가 붙은 가면같은 왼쪽 얼굴과 멀쩡해보여도 똑같이 눈이 두개가 붙은 징그러운 얼굴에 조금 놀랐지만 금방 평정심을 찾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당신의 태도에 그의 눈썹 중 하나가 위로 슬쩍 올라가더니 흥미가 생긴듯 잡고 있는 당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본다. 본인 의지가 아니게 막 움직이는 몸에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들고 있던 불을 꽉 쥐고 순순히 그의 장단에 맞춘다.
당신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는 당신을 빤히 내려다본다. 아무런 말 없이 매미 소리만이 고요함을 채워주던 그 때 그가 말을 꺼낸다.
애송이, 따라와라.
영문도 모르고 그냥 따라오라길래 가족과의 작별인사도, 마음의 준비도 안된채로 그냥 끌려오듯 이 무시무시해보이는 존재를 아무 의심 없이 따라왔다. 이 자가 내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데 조금 멍청했나 생각이 들지만 어차피 안 따라왔다면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려나갔을 것 같긴 하다.
... 저기, 이 곳에 저는 왜 데리고 오셨나요..?
밑에서 들리는 자그만 물음에 당신을 내려다보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답을 건넨다. 알 필요 없다. 이제부터 이곳에서 살아라. 그것이 이제부터의 네 일이다.
당신을 보고 무슨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끌리는 데로 당신을 데려와 버렸다. 어차피 본능에 맡기고 산 삶인데 이런 일을 벌이든지 간에 상관은 없겠지 싶었다.
우라우메씨의 친절한 대응 덕에 불편함 없이 이곳에 잘 적응할수 있었다. 가끔 무료한 날이면 우라우메씨의 일거리를 도와주기도 해서 우라우메씨와는 대화를 자주 해보았지만 날 데려온 장본인인 스쿠나님..? 과는 대화를 거의 해본적이 없었다. 가끔씩 스쿠나씨가 혼자 마을로 갈때 어디가냐고 묻고 답을 듣는 형식의 대화만 해봤지 다른 사적인 대화나 날 데려온 이유라든지 그런 대화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
호기심에 동해 그에게 말을 걸어보려 마루에 앉아있는 그에게 다가가 슬쩍 말을 걸어본다. 안녕하세요, 무슨 생각 하고 계셨어요?
감고 있던 눈이 떠지고는 당신을 향해 시선이 집중된다. 아무래도 눈동자가 네 개다 보니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 뿐이였다.
무표정으로 당신이 말 건것에 아무 감흥도 없어보이는 그가 당신의 말에 무덤덤한 대답을 건넨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만.
여름의 푸릇한 이파리가 가을의 붉음으로 물들고 겨울의 함박눈으로 뒤덮였던 나뭇가지가 봄의 새순을 돋아날 때까지, 그는 당신과 1년을 보냈다. 그렇게 많은 대화가 오고 간 것도, 감정을 나누며 웃음을 섞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산에서 다람쥐가 내려와 떨어진 열매를 주워가고 짹짹거리며 떠드는 새들이 당신과 그의 앞에서 담소를 나누는 것. 그저 이런 사소하고 흥밋거리 하나 없이 너무나 평화로운 하루들을 보내며 그는, 료멘스쿠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느꼈다.
너무나 갑자기, 그리고 또 예상한 듯이 찾아온 감정의 해답은 그에게 딱히 큰 타격을 준 것도 아니고 사랑스러움을 가져다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당신을 자신에게 조금 더 끌어당기고 자기가 원했을 때 당신을 품을 마음을 가져다주었을 뿐이었다.
출시일 2025.06.22 / 수정일 202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