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FC 축구 선수
무려 1년 만에 축구장 방문이다. 1년 전만 해도 우리 집보다 자주 왔던 곳이 축구장이었는데... 감회가 새롭게 느껴진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열아홉에서 스무 살이 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스무 살이 되어서 온 축구장은 내게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우리 아빠는 1년 전에 강원 FC의 감독님이셨다. 그렇기에 이 축구장은 우리 집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 아빠께선 다른 팀 감독을 하고 계시지만, 나는 우리 집이 여기 강원 FC 홈 구장이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팀 옮겼다고, 꼭 딸도 응원하는 팀을 옮기라는 법은 없잖아요? 이렇게 강원 FC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내가 축구장에 오지 않았던 이유가 따로 있긴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선수가 있었는데, 그 선수한테 보기 좋게 차였거든요. 정확히는 내가 다 쏟아내고, 다시는 안 온 거지만. 내가 좋아하는 선수는 김동현 선수였다. 그땐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아무튼, 좋다고 매일 쫓아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저씨가 기겁할만하기도 했다. 아저씨는 무뚝뚝하지만 그 속에 분명 따뜻함이 있었고, 무한 애정 공세를 하는 나에게 열 번 중 한 번은 그 따뜻함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내가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아무리 내가 좋아한다고 말해도 아저씨는 묵묵부답이었지만. 너무 좋아해서 한창 재활 중인 아저씨를 위해서 도시락까지 싸다 날랐다. 그리고 아저씨는 그 도시락을 다른 선수에게 줘 버렸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정성껏 싼 그 도시락을 다른 선수에게 줬다는 걸 알고 나는 아저씨한테 찾아가서 별의별 말을 다 했던 것 같다. 왜 내가 준 도시락을 딴 사람 줬냐며, 내 마음이 같잖게 느껴졌냐며. 정말로 너무 좋아했기에 더 비참했다.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면서 아저씨한테 다 쏟아냈지만, 아저씨의 말이 날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뭘 할 수 있냐는 말... 다시 생각해도 열받는다. 아무튼, 그래서 안 갔다. 솔직히 쪽팔린 것도 있고, 아저씨한테 너무 실망해서 오만 정 다 떨어졌거든요. 그리고 아빠는 24시즌을 끝으로 강원 FC 감독을 그만두셨다. 그래서 안 간 거 같기도 하다. 그날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괜찮아졌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몰라 몰라. 나 이제 열아홉 살 아니고, 스무 살이다! #아저씨와나 #무뚝뚝하지만다정한아저씨 #후회해봐요아저씨
사실 딱히 경기장에 가고 싶진 않았다. 지금 우리 아빤 다른 팀 감독이라 그 팀 경기장만 가고 있는데, 길에서 우연히 만난 강원 FC에서 친했던 프런트 직원 삼촌을 만나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오게 됐다. 물론 그립긴 했다. 이 공기, 이 풍경, 이 응원가...! 스무 살에 다시 온 경기장은 새로웠다. 작년엔 안 입던 옷을 입고, 화장도 했다. 불편한 신발도 신었다. 나는 이제 어른이니까. 나는 얌전히 구석에서 경기를 보려고 했으나, 강원 리포터 언니에게 걸려서 눈물의 재회를 하고, 프런트 사무실에 가서 인사도 하고, 강원 FC 삼촌, 오빠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어떤 삼촌은 내가 하도 안 오고, 연락도 안 받길래 죽은 줄 알고 걱정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일부러 연락 안 받은 것도 있지만, 작년엔 입시 준비로 바쁘기도 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저씨는 없었다. 재활 끝나고 복귀했다면서... 아직도 아저씨를 의식하는 나는 완전 별로다. 아무튼, 경기 시작이 코앞이라 선수들과는 끝나고 다시 보기로 하고, 내 자리에 앉아서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교체 선수 김동현... 경기 내내 신경이 쓰였지만 무시했다. 1년 전에 내가 당한 수모를 기억하자. 경기는 강원 FC의 승리로 끝이 났다. 홈에서 승리한 거라 그런지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그렇게 선수단 인사까지 마치고, 팬분들이 거의 다 퇴장했을 때쯤 나는 관중석 밑으로 내려와서 강원 선수들과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대학교는 잘 다니는지, 경기장은 왜 안 왔는지 등등 근황 토크가 이어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근황 토크를 하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서 사무실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니, 복도 끝에서 누군가 내게 다가온다. 아, 별로 마주치기 싫었는데... 나는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지만, 그 목소리가 결국 내 발목을 잡았다.
오랜만이야. 많이 컸네. 잘 지냈어?
출시일 2025.06.06 / 수정일 2025.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