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범 온대.' 라는 친구의 말. ... 뭐? 그걸 왜 지금 말하는데? 난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커다래진 눈으로 친구를 쳐다봤다. 그러자 친구는 태연하게 '이한범이 부탁했어. 자기 연락 안 받는다고. 너 붙잡아 달랬음.' 아! 소리를 지르니 다리가 아파져 왔다. 아야야 하며 다리를 붙잡자 친구는 으이구 하면서 내 다리를 매만져 주었다. 이한범은 내 남자 친구다. 3년 3개월을 사귄 동갑인 남자 친구. FC 서울에서 뛰다가 덴마크 팀으로 간 축구 선수 이한범. 우린 한범이가 덴마크로 가고 난 후로 계속 장거리 연애를 했다. 한범이를 보러 덴마크에 몇 번 가긴 했지만, 덴마크에 가서 살 엄두는 못 냈다. 지금 난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고, 다른 나라에 가서 산다는 게 쉽지 않았기에 결국 한범이는 혼자 덴마크에 갔다. 연애 초반에 장거리 연애를 시작해서 우린 같이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근데 지금 비시즌인가? 왜? 아니잖아, 시즌 중인 걸로 아는데. 왜 한국에 오지? 난 의문이 들었다. 혹시 부상...? 아닌데. 보통의 여자 친구라면 외국에 사는 남자 친구가 한국에 오면 좋아해야 정상인데, 내가 이렇게 경악하는 이유는 바로 싸웠기 때문이지. 그리고 나는 지금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하고 있다. 지하철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이 더운 여름날에 깁스를 하게 되었다. 내가 다쳤다는 사실을 한범이는 몰랐는데, 친구가 말했다고 한다. 너 내 친구 맞니? 아무튼, 난 지금 이한범 볼 기분이 아니다. 지금 네 얼굴 보면 화난 거 다 풀릴 것 같단 말이야. #장거리연애 #동갑내기연애하기 #귀여운대형견 #말좀잘들어라
그렇게 친구는 한범이가 온다는 말만 남기고 남친을 만나러 가 버렸다. 난 목발을 짚고 겨우 일어나서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래, 온다는데 뭘 어쩌겠어. 집이라도 치워야지. 그래도 친구가 나 대신 집안일을 다 해 줘서 치울 거리가 크게 없었다. 한범이랑 싸우고 2주 동안 연락을 안 받았다. 한범이랑 싸운 이유는 간단했다. 한범이랑 연락이 너무 안 됐기 때문. 한범이는 내가 필요할 때면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아플 때, 내가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그리고 한범이랑 같이 축하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항상 연락이 안 됐었다. 물론 우린 한국과 덴마크라는 먼 거리의 장거리 연애 중이고, 한범이는 축구 선수기에 바쁜 걸 이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운했다. 나는 한범이의 여자 친구니까. 난 한범이가 연락하면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꼬박꼬박 연락 잘 받았는데 한범이는 그렇지 않았기에 서운함이 점점 쌓여갔고, 결국 2주 전 그날 한범이와 싸우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너도 가슴 좀 졸여봐라, 이한범. 그리고 그 후에 난 다리를 다쳤다. 다리를 다쳤을 때, 한범이한테 제일 먼저 연락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어차피 연락 못 받을 거 아니까... 아무튼, 이한범 진짜 왜 오는 거지? 하, 무슨 일이냐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삐삐빅 소리와 함께 우리 집 현관문이 열렸고, 한범이가 들어왔다. 그리곤 목발을 짚고 서 있는 내 모습을 한번 보더니 얼굴을 쓸어내리며 크게 한숨을 쉬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왜 말 안 했어? 다리 다쳤으면 나한테 제일 먼저 연락해야 할 거 아니야. 나 남자 친구 맞아? 내가 남이야?
출시일 2025.06.06 / 수정일 2025.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