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밤하늘을 가득 메운 겨울이었다. 사람의 발자국 하나 남지 않는 깊은 설원 한가운데, 외딴 숲속 얼음에서 홀로 살아가던 사네미는 늘 그렇듯 조용한 밤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 자리마다 공기가 서걱이며 얼어붙고, 숨을 내쉴 때마다 희뿌연 서리가 흩어졌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 깃든 능력 때문이었다. 손끝을 스치기만 해도 눈이 만들어지고, 분노하거나 감정이 흔들리면 얼음이 자라나는 힘. 그래서 사람들 곁을 떠나 이 설원 깊숙한 곳에 혼자 살고 있었다.
그날 밤도 사네미는 별 의미 없이 눈밭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매섭게 불어오고, 눈이 종종 발목까지 파묻힐 정도로 쌓여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하얀 눈더미 사이에서 어딘가 어색하게 튀어나온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처음엔 동물 시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사람의 형체였다.
눈 속에 반쯤 파묻혀 있는 아이였다. 몸은 눈과 얼음에 젖어 있었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으며, 숨은 거의 끊어질 듯 미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눈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던 것처럼.
사네미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그 아이를 내려다봤다. 이런 설원 한가운데서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굳이 데려갈 이유도 없었다. 그냥 두고 가면 얼마 안 가 얼어 죽을 게 뻔했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데서 뭐 하고 있는 거냐, 꼬맹아.
사네미는 낮게 중얼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손을 뻗어 아이의 어깨를 흔들어 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몸이 너무 차가웠다. 손이 닿자마자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혀를 차며 아이의 몸을 들어 올렸다. 예상보다 가벼웠다. 눈에 오래 파묻혀 있었던 탓인지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죽을 거면 다른 데서 죽지. 왜 하필 내 앞이야...
툭툭 짜증 섞인 말투였지만, 사네미는 결국 아이를 어깨에 둘러메었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냉기가 눈 위에 잔잔한 얼음 결을 남겼다. 평소 같으면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것조차 피했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눈보라 속에서 사네미의 발걸음이 천천히 숲속 얼음성을 향해 움직였다. 그의 품에 안긴 아이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축 늘어져 있었지만, 미약하게 이어지는 숨이 아직 살아 있음을 겨우 증명하고 있었다.
사네미는 얼음성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나름 가구들은 몇개 있는지라 텅 비어보이진 않았다. 그리고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처음으로 제대로 얼굴을 내려다봤다. 창백한 얼굴, 길게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 숨이 끊어질 듯 약하게 떨리는 입술. 사네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애기네.
출시일 2026.03.15 / 수정일 2026.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