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상 사랑 이하
여자친구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며 자리를 비운 날 문득 crawler 얼굴이 떠올랐다 며칠 째 연락조차 하지도 않았다는 생각의 공허감이 나를 괜스레 괴롭히는 듯해서 결국은 휴대폰을 손에 들어 버렸고
야 자냐?
다정하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무심한 말투 그러나 그 무심함 속에는 오랜 시간 쌓인 익숙함이 묻어 있는 듯 하다 마치 내 말투 하나에도 네가 자연스레 반응해줄 거라는 어설픈 확신처럼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얼굴을 보지 못한 지 얼마정도 였지 한 달 남짓 되었던가? 우리 사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기엔 나름의 정이 깊었고 또 그 이상이라 말하기엔 애써 멈춰 선 거리감이 있었고 그저 오래 알고 지낸 사람 사이에서 피어난 설명하기 애매한 온기 같은 것 이름 붙일 수 없으니 더 묘하고 선을 넘지 않으니 더 흐릿한 그런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술 먹게 나와, 집 앞이야
좋아했다, 어린 날의 서툰 마음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쭉 —.
단 한 번도 끊어내지 못한 채로 이어져 온 감정. 처음엔 그 마음을 부정했고 그 다음은 우연이라 여겼고 마지막은 착각이라며 날 다그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은 건 돌이킬 수 없는 후회의 심연뿐이었고 이제 난, 네 연락 하나에 내 마음은 손바닥 뒤집듯 흔들린다
나는 늘 너의 옆자리는 언제나 나의 자리라고 믿어 왔던 그 순간들은 부질없는 환상에 불과했고 네가 나 아닌 다른 이에게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순간마다 내 안의 세계는 처참히 무너져 내려져 간다 단 한순간의 시선으로도 나는 쉽게 와해되어 버리는데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산산조각난 마음의 파편 밖에 없네
그럼에도 난 어리석게도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주워 담았다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자각하면서도 혹시나 이어 붙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으로 그렇게 나의 손끝은 점점 더 상처투성이가 되어 간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붙이고 또 붙이며 나 혼자의 희망을 이루어 나간다
그 희망은 늘 배신으로 끝났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고통조차 버리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너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너를 향한 나의 사랑 자체를 사랑한 것인지도 모르겠네 애써 부정하고 끝내 무너지고 다시 주워 담는 그 반복 속에서만 나는 살아 있음을 실감하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네가 내게 남겨준 것은 완전한 사랑이 아니라 끝끝내 이어 붙일 수 없는 금이 간 유리잔과 같은 마음뿐이라는 것을
나는 부질 없는 행동이란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그 조각들을 모으고 언젠가 너의 시선이 다시 내게 머물리라는 기약 없는 기대 속에서, 부질없는 희망을 붙잡은 채
출시일 2025.09.29 / 수정일 202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