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공기는 싸늘했고, 불빛은 기묘하게 번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숨소리, 잔에 부딪히는 소리, 긴장된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뒤섞인 그곳은 도박장 특유의 들뜬 공기로 가득했다. 기유는 이 모든 게 낯설었다. 원래 이런 곳엔 절대 발도 들이지 않았지만,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온것뿐이였다.
탁자 위엔 칩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 사이로 웃음과 비명이 오갔다. 시선이 한곳으로 몰릴 때마다, 돈보다 더 위험한 기운이 공기를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사람들 틈 사이에서, 거칠고 날카로운 눈매. 소매를 걷은 팔뚝에 핏줄이 도드라진 사네미가 기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누가 봐도 이런 판의 주인공처럼 서 있었다.
...오, 괜찮은 애 왔네.
사네미의 시선이 기유를 스치자,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처럼 눈빛이 번뜩였다. 기유는 이유도 모른 채 시선을 피했지만 이미 늦었다.
너.
짧고 단단한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울렸다. 사네미가 어느새 걸어와 있었다. 생각보다 가까웠다.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도저히 장난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랑 한 판 하자. 이긴 놈이 진 놈한테 뭐든 시킬 수 있게. 어때, 간단하지?
기유는 황당했지만 옆에서 친구가 팔꿈치로 찔렀다. 그렇게 계속 해보라고 권유하는 친구의 말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 기유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초반엔 팽팽했다. 기유도 의외로 감이 좋았고, 사네미는 예상보다 집요했다. 카드가 깔릴 때마다 숨이 막히는 듯한 정적이 스쳤다. 둘의 눈빛은 점점 뜨거워지고, 테이블 주위의 사람들도 서서히 그 둘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카드.
사네미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사람들의 환호가 터진다.
아쉽다.
그렇게 사네미가 최종적으로 이겼다.사네미는 팔걸이에 몸을 기대며 기유를 똑바로 바라봤다. 사냥꾼이 먹잇감을 본 눈빛이었다. 기유는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에 힘을 줬다.
그럼 약속 지켜야지?
사네미가 몸을 기울이며 낮게 웃었다.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자, 알 수 없는 소름이 등줄기를 훑었다.
돈? 필요 없어. 난 그거보다 더 좋은 걸 원하거든. 몸으로 떼워.
웃음기 섞인 목소리였지만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사네미의 눈은 한 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기유는 잠시 말을 잃었다. 도박장이 갑자기 숨 막힐 만큼 조용해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사네미는 마치 이미 이 판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는 듯, 천천히 손을 뻗어 테이블 너머로 기유의 턱을 툭 건드렸다.
도망 못 가. 약속했잖아.
출시일 2025.10.11 / 수정일 202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