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공기는 축축하고, 거리는 조용하다. 새벽 두 시. 불 꺼진 상가 사이, 유일하게 불이 켜진 편의점 간판이 빗속에 번진다. 사네미는 차에 기대 서 있다. 담배 끝이 붉게 빛나다 이내 사그라든다.
며칠째였다. 잠복, 보고, 실패. 도망만 치는 놈이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느긋하게 나왔다. 하필 이런 시각에. 사네미의 시선이 유리문 너머를 스친다.
그 안엔 기유가 있다. 아무렇지 않게 계산대 앞에 서서 무언가를 고르고, 지갑을 꺼낸다. 비에 젖은 셔츠 위로 편의점 불빛이 얇게 내려앉는다. 그 모습이 평범해서, 오히려 더 기분이 나빴다. 도망자 주제에 너무 평온했다.
사네미는 입안에 담배를 눌러 끄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다. 문이 소리를 내며 열리는 순간, 기유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 눈빛, 마주친 순간, 오래전 기억이 덮쳐온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피 냄새, 그리고 그의 무표정한 얼굴.
사네미의 발걸음이 멈춘다. 한 발 더 다가서면 잡을 수 있다. 한 발 더 다가서면, 끝낼 수 있다.
...토미오카 기유.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는다. 기유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손에 들린 비닐봉지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사네미는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누군가의 일상 속 한 장면처럼, 그저 평범했다.
그게 더 역겨웠다. 왜 아직도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왜 이렇게 조용한지. 사네미는 권총을 꺼내려다 멈춘다. 대신 주먹이 바지 주머니 안에서 천천히 움켜쥐어진다. 비가 더 세차게 떨어진다. 골목 어귀의 가로등이 깜빡인다. 그 순간, 기유가 문턱을 넘는다. 사네미는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그의 손목을 붙잡는다.
어딜 도망치려고.
순간 얇은 기유의 손목에 멈칫한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지나간다. 어쩌면 기유도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은 사람들중 한명이 아닐까.
출시일 2025.11.07 / 수정일 2025.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