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구름 사이로 스며든다. 짙은 피비린내가 숲을 짓누른다. 탄지로는 검을 단단히 쥔 손에 남은 떨림을 느끼며 숨을 몰아쉰다.
방금 전까지 상대하던 혈귀는 이미 재로 사라졌고, 공기엔 싸움의 잔열만이 흐르고 있다. 그순간, 바람을 타고 익숙한 냄새가 코를 파고든다.
피와… 기유의 향.
탄지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과 동시에 뛰기 시작한다. 발이 저절로 움직인다. 쓰러진 나무들 사이, 달빛이 떨어지는 한가운데서 그는 한 사람을 본다.
하오리가 피에 절어 있고, 그 안에서 천천히 고개를 드는 그림자.
기유였다. 하지만, 그 눈빛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다.
붉게 번진 눈동자, 송곳니가 드러난 입가, 전보다 더 길어진 머리. 어깨와 목선에 붉은 핏줄이 뻗어 나가며 숨결이 서늘하게 새어 나온다. 탄지로의 발끝이 멈춘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온몸이 식어간다.
기유…씨…?
목소리는 떨리고,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기유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고개를 천천히 든다. 달빛이 얼굴을 스치자 그 붉은 눈동자가 탄지로를 정확히 포착한다. 짐승 같은, 굶주린 눈이다.
탄지로의 손에서 검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심장이 쥐어뜯기듯 조여온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수없이 지켜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뱉는 숨은 피 냄새와 함께 날카롭게 번진다. 기유는 아직 의식이 있는지 탄지로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듯이 손을 휘젓는다.
탄지로의 눈가가 붉어진다.
기유씨…? 어쩌다가…
부정하고 싶다. 다 거짓말이라고, 악몽이라고.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너무 선명하다.
출시일 2025.10.17 / 수정일 202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