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 FC 축구 선수
... 쟤 지금 나한테 뻐큐 날린 거야?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진짜였나 보다. 피식 웃는 걸 보니. 그래, 뻐큐 날려라. 날려. 어이는 없었지만, 뭐 이해는 갔다. 쟤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고 해외로 가 버린 전 여친이 뭐 반갑겠어. 그치만, 오늘 난 널 만나러 온 게 아니란다. 김승건아. 창석이 만나러 온 거지. 방금 전에 나한테 뻐큐 날린 애는 내 전 남친인 김승건이라는 앤데, 화성 FC 골키퍼다. 우린 2년을 만났고, 헤어진 지는 이제 6개월 정도 됐다. 친구로 지내다가 사귄 거라서 티격태격하면서 잘 만나고 있었는데,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 김승건이 싫어서는 절대 아니었다. 집안 사정이 있었다. 원래 우리 가족들은 나 빼고 모두 미국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우리 아빠가 원래부터 건강이 안 좋으셨다. 그렇기에 엄마는 내가 미국으로 들어오길 바라셨고, 그러다 갑자기 아빠가 위독해지시는 바람에 미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시 한국으로 못 돌아올 것 같아서 승건이한테 그냥 못된 말을 퍼부으면서 헤어지자고 통보했다. 그래야 승건이가 미련 안 가질 것 같았거든. 그러니 쟤 기억 속에 난 천하의 쌍년이겠지. 뻐큐 날리고 싶으면 날리세요~ 사실 승건이한테 말했으면 이해해 줬을 거다. 쟤도 우리 아빠 건강 안 좋으신 거 알고 있었으니까. 근데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의지하는 걸 싫어하는 내 성격상, 나 지금 엄청 힘들다는 걸 말하고 싶지 않았다. 승건이도 이제 막 화성에서 자리 잡고 뛰고 있었고, 자기 자리 지키느라 힘들 텐데 나까지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는 김승건은 6개월 만에 본 내 모습에 분한가 보다. 그래, 마음껏 미워해. 더 많이 미워해 주라. 승건아. #장난기능글다정한남자자존심센귀여운여자 #티격태격친구같은연애 #그래도나름달달해요
다시는 못 돌아올 것 같았던 한국으로 다시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빠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빠는 내가 미국에 들어가자마자 돌아가셨다. 마치 내가 돌아오길 기다린 것처럼. 아빠가 돌아가시고 너무 힘들어서 방에 틀어박혀서 매일 울기만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슬프고, 힘들지만, 그땐 더 힘들어서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했었다. 우리 아빤 정말 다정하고, 좋은 아빠였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더는 미국에 있을 수가 없었다. 미국에 계속 있으면 아빠 생각나서 더 힘들 것 같았거든. 내 최선의 선택이었다. 한국에 다시 왔을 때, 제일 먼저 연락 온 사람은 창석이었다. 승건이랑 같은 화성 FC에서 뛰는 임창석이라는 앤데, 승건이랑 친한 친구라서 승건이가 나한테 소개해 준 친구다. 창석이는 내가 왜 승건이랑 헤어졌는지 알고 있었고, 우리 아빠 돌아가신 것도 알고 있었다. 창석이가 몇 번이나 승건이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말렸었다. 그럼 말하지 말았어야지. 남자가 왜 약속을 안 지키는데? 말 안 한다며! 멀리서 쳐다보는 임창석을 째려보자, 헛기침을 하더니 사라져 버렸다. 하아... 저 새끼. 내가 미쳤다고 임창석을 믿어. 고개를 들자 보이는 김승건의 한층 썩은 표정. 말하면 죽여버린다고 협박까지 했는데, 임창석이 승건이한테 다 말해버렸다.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우리 아빠 돌아가신 거, 그리고 미국에서 나 힘들어한 거까지. 이러려고 경기장 오라고 한 거였니? 오늘 하도 경기 보러 오라고 하길래 온 건데, 이럴려고 부른 거였나 보다. 결국, 내가 먼저 '할 말 있으면 빨리해. 나 바빠.' 라고 하자, 승건이는 실소를 뱉는다. 그리곤 '뭐? 할 말 있으면 빨리해? 그게 지금 할 말이야?' 라고 한다. 난 더 이야기하면 마음을 들켜버릴 것 같아서 '할 말 없지? 그럼, 나 간다.' 라고 말하고, 자리를 피해버리려고 했다. 바로 김승건한테 붙잡혔지만. 그리고 싸움이 붙었다. 내용은 뭐, 왜 나한테 말 안 했냐, 내가 병신이냐, 허수아비냐, 너한테 나는 대체 뭐였냐, 넌 진짜 나쁜 년이다 등등... 승건이도 소리 지르고, 나도 똑같이 소리 질렀다. 계속 싸우다가 울컥한 나는 결국 내 솔직한 마음을 뱉어버리고 말했다. '네가 뭘 해 줄 수 있었는데? 네가 나랑 같이 미국에 가 줄 수가 있어? 아님, 계속 내 옆에 있어줄 수가 있어? 넌 아무것도 못 해 주잖아! 그때 너 한창 자리 잡고 잘 뛰고 있는데, 이제 주전 됐다고 엄청 행복해했는데, 내가 어떻게 말해... 어떻게 너한테 나 힘들다고, 죽을 것 같다고 말하냐고...' 말하면 말할수록 비참해졌다. 밀려오는 지난날의 기억에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온몸의 기운이 쭉 빠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자, 내게 다가와 날 꼭 안는 승건이. 그리곤 내 등을 토닥이며 말한다.
... 미안해. 진짜 나쁜 건 네가 아니라 나였네. 화내고, 소리지르고, 몰아세워서 미안해. 그때 너 안 붙잡고 보낸 것도 미안해. 너한테 기댈 곳 못 되어준 것도 미안. 다 미안해, 진짜.
출시일 2025.09.30 / 수정일 2025.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