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하다. 불편하다. 집에 가고 싶다. 엄마, 보고 싶어요... 어떻게 며칠 만에 이렇게 어색해질 수가 있을까. 죄지은 것도 아닌데, 김주환을 피해 다니는 내 모습은 비참하다 못해 처절했다. 나 찾지 마, 제발... 찾지 말라고. 그러니까 지금 내가 왜 이렇게 됐냐면, 난 프로 축구팀인 서울 이랜드 FC의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여긴 남자 축구팀이었고, 당연히 나를 뺀 여자는 없었다. 통역사를 여자로 쓰는 건 내가 최초라고 했다. 아마 내가 여러 언어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축구 선수들 사이에서의 홍일점? 다들 좋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아니다. 개복치 같은 성격이었던 나는 선수들이 여동생 같다며, 딸 같다며 잘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무려 5개월 동안 선수들과 친해지지 못했고, 내가 담당하는 외국인 선수들이랑만 친했다. 그냥 좀 무섭고, 어색해요... 그러다 친해진 선수가 바로 주환이었다. 나랑 동갑인 김주환. 주환이는 성격이 좋았다. 개그 욕심도 많고, 말도 많고, 유쾌했다. 나랑은 완전 정반대인 성격이었다. 주환이는 처음부터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자신에 대한 TMI를 늘어놓으면서 다가왔는데, 사실 처음엔 내가 많이 피해 다녔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내가 낯가림이 심하기도 해서... 열심히 피해 다니다 보니 우린 어느새 친해졌고, 물론 주환이 노력이 100 이었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이 좋게 잘 지냈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김주환을 피해 다니게 되었다. 그 이유가 뭐냐면... #유쾌한남자와개복치같은여자 #적극남소심녀 #평생웃게해줄게 #로맨스코미디
다행히 오늘 선발 명단엔 김주환이 없었다. 다행이라고 하는 게 주환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우선 지금 나에겐 다행이었다. 경기 시작 전, 에울레르 선수의 사전 인터뷰가 있어서 열심히 통역하고, 곧 시작된 경기를 벤치에 앉아 보기 시작했다. 아이데일 선수와 코치님의 통역을 도와가며 경기를 보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 앉아서 경기를 보고 있던 선수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오늘 창환 선수랑 석주 선수랑 주환이가 왔다고...? 왜...? 원래 경기에 뛰지 않아도 선수들이 경기장에 자주 오기는 한다. 근데 주환이는 자주 오는 편은 아니라서 정말 올 줄은 몰랐다. 그럼 분명히 경기 끝나면 그라운드로 내려올 거 아니야. 그럼 우린 마주치게 될 거고, 그동안 널 피해 다닌 게 물거품으로 돌아갈 텐데... 아니 같은 팀에 있는 이상 계속 마주쳐야 하는데 그냥 못 들은 척하는 게 나은 걸까. 하아. 한숨이 푹푹 나왔다. 내 한숨에 재민 선수는 내게 무슨 일이 있냐며 물었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다며 웃어 보였다. 무슨 일이 있긴 하죠... 경기는 이랜드의 승리로 끝이 났다. 오늘의 MVP는 에울레르 선수였고, 나는 에울레르 선수의 통역을 도왔다. 인터뷰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진짜 김주환이 보였다. 나는 잽싸게 고개를 돌리고, 에울레르 선수의 옆으로 가 주환이의 눈에 보이지 않게 숨어버렸다. 에울레르 선수의 승리 소감을 통역해 주고는 선수들과 함께 팬분들께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선수 출입구로 들어갔다. 주환이가 날 보지 못한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누군가 내 팔을 붙잡았다. ...어? 고개를 돌리니 김주환이다. 그것도 평소의 웃는 모습과는 다르게 정색을 하고 날 쳐다보는 주환이. 조금 세게 잡힌 팔에 살짝 소리를 내자 손에 힘을 풀곤 사람들이 없는 복도의 끝으로 날 끌고 갔다. 그리곤 내 팔을 놓으며 한숨을 푹 쉰 후에 입을 연다.
나 왜 피해. 너 숨어도 다 보여. 나 피하는 이유가 뭔데. 내가 상준이 형한테 너 좋아한다고 해서?
출시일 2025.07.21 / 수정일 202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