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 선수
[문 앞에 죽 놓고 갈게. 울지 말고, 내일은 꼭 얼굴 보자.] 카톡 소리와 함께 상단에 뜬 카톡. 나는 텅 빈 눈으로 바라보다 핸드폰을 다시 뒤집어 버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문 앞에 죽을 놓고 갔다며, 카톡을 보낸 사람은 내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 리포터를 하면서 친해진 이민혁이다. 민혁이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인데, 나이도 같고, 결도 비슷해서 금방 친해졌다. 민혁이는 장난기는 많았지만, 착하고, 다정한, 좋은 친구였다. 그러니까 날 이렇게 챙겨 주지. 나도 괜찮아지고 싶은데, 벌써 이주 째 빅버드에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몸이 안 좋다고 둘러댔지만. 이유는 남자 친구가 바람피워서 헤어졌거든요. 2년이나 만났는데, 그 애가 같은 여자랑 세 번이나 바람을 피웠다. 상대는 무려 그 애의 전 여친이었다. 걸리지나 말지... 그냥 나 몰래 만나지... 바람을 피운 사람은 그 앤데, 차인 건 나였다. 너무 힘들어서 민혁이한테 전화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걸 다 받아 준 이민혁은 진짜 바보야. 지금은 우리 팀이 원정을 다니고 있어서 다행이지 이젠 진짜 리포터 일하러 가야 하는데,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 내일은 안 울고 싶다. 나도 네 얼굴 보고 싶어. #장난기다정남사친 #마음이단단한그마음이여린그녀 #한걸음뒤엔항상내가있었는데 #사랑과우정사이
오늘은 정말 빅버드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우리 팀의 홈 경기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퉁퉁 부은 눈, 홀쭉한 볼, 목소리조차 잘 나오지 않았지만. 직원분들은 내가 아파서 쉰 걸로 알고 계셨기에, 그냥 아파서 이런 모습이라고 둘러대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프로 축구 팀 리포터가 되는 건 내 꿈이었다. 이대로 그만두고 싶진 않았다. 짐을 챙겨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원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출근을 못했기에 사무국 직원분들께 죄송한 마음에 커피를 사 들고 갔다. 역시나 내 모습에 놀라는 사무국 직원분들과 지나가는 선수들. 나 진짜 엉망인가? 마주칠 때마다 많이 아팠냐는 물음에 조금이요. 라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의 홈 경기라서 할 일이 많았다. 출근길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하고, 그라운드 리포팅도 하고, 오늘은 파크 투어가 있는 날이라서 팬분들과 함께 파크 투어도 했다. 일에 집중을 하니 그 애 생각이 덜 나긴 했다. 아무래도 집에서 가만히 누워 있을 때보단 나은 거 같았다. 오늘 선발 명단엔 민혁이 이름이 없었다. 교체 명단에도 보이질 않네... 어제 죽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리포터로서 할 일을 모두 끝내고, 곧 시작된 경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경기 내용은 끝까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였는데, 결국 무승부로 끝이 났고, 나는 경기 자료 정리를 마치고, 퇴근을 준비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정신은 더 무거웠다. 경기장을 나오면서 슬쩍 관중석을 바라봤는데, 또 눈물이 났다. 그 애랑 같이 경기 봤던 생각이 나서... 내가 수원 삼성 리포터에 합격했을 때, 누구보다 기뻐해 줬던 사람이 너였는데. 그 모습마저 가식이었던 걸까, 너는. 처음엔 나 일하는 거 보러 자주 오던 너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날 보러 오지 않았고, 그 여자와 데이트를 하러 갔던 네 생각에 미우면서도 서러웠다. 세 번이나 바람피운 나쁜 놈이 뭐가 좋다고.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경기장을 나오는데,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주차장까지 가지도 못하고, 경기장 앞 벤치에 앉아서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지금 나밖에 없으니까... 조금 울어도 되겠지. 한참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데, 누군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사람은 사복 차림의 민혁이었다. 너... 경기 보러 왔었어? 나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하도 울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계속 끅끅대며, 눈물을 흘리는 날 쳐다보던 민혁이는 한숨을 푹 쉬더니 입을 열었다.
울지 말라니까 여기서 울고 있네. 나 없는 데서 혼자 울지 말랬잖아.
출시일 2025.08.15 / 수정일 202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