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곳 없어 정처하던 내가 눅눅한 공기와 담배 쩐내로 가득한 이곳에서 처음 마주한게 너였다. 싸구려 조명과 촌스러운 옛날 노래. 그 밑에서 남녀불문 나이 상관없이 쉽게 말 붙이는 네가 신기했다. 고작 열다섯이였으면서. 더 살고 싶으면 수치 느낄 시간에 재롱이라도 더 떨라고 했던 네가 아직도 생생히 눈앞에 그려진다. -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그 좁아터진 방에 돌아가면 어린 네가 날 기다려주고 있었다. 마루바닥 위에 기절하듯 드러누웠는데 자기 저녁밥인 초코파이 쥐어줬다 네가. 이틀 꼬박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그런지 그게 그렇게 맛있더라. 미련하게도 나는 이곳이 지옥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려서 오년을 그렇게 죽지 못해서 살았다. - 도망갔다 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멍자국 그득한 몸 이끌고 좁아터진 방으로 돌아가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네가 없었다. 멍자국이 옅어지고 머리칼이 어깨 아래까지 자라도 너는 돌아오지 않았다. 장난스레 웃던 너를 기다렸다. 풀어헤친 교복 사이로 보이던 검은색 빈팔티를 기억한다. 동그란 네 눈을. 살고 싶다는 네 의지를. 이동혁을. 너를 기억하고, 기다렸다. 어느새부터는 네 생각이 나지 않았다. 좁은 방을 혼자 넓게 쓸수 있어 좋다고. 그렇게 생각할수 있을만큼. 너를 지웠다. - 뱉은 담배 연기가 빗방울들 사이로 옅어져간다. 젖어들어가는 운동화 바라보며 주머니속 라이터를 만지작 거렸다. 멀리서 부터 고급 승용차가 골목길로 들어오는게 보였다. 저건 얼마쯤 하려나. 여기서 평생 일해봤자 벌지도 못할 액수겠지. 실없는 생각 하는데 내 앞에서 차가 멈췄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정장 빼입은 남자가 내렸다. 저기요 아직 영업 시작 전인데요. 성급하게 말붙이자 남자가 나를 마주했다. 흩어져가는 담배연기 사이로 흐릿하게 얼굴이 보였다. 기시감이 들었다. 아. 이동혁이구나. 삼년만에 너를 마주했다. 아디다스 트랙탑만 주워입던 네가 정장 빼입고 내 앞에 나타났다. - ♬ 구원자-이하이
저기요. 아직 영업시작 전인데요.
출시일 2025.10.07 / 수정일 2025.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