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사네미는 마지막 박스를 현관에 내려놓고 허리를 편다. 집이 생각보다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귀가 먹먹해질 정도다. 벽지는 누렇게 바랬고, 공기는 오래 잠겨 있던 물처럼 차갑다. 부동산에서 조용해서 좋아요라고 했던 말이, 이제 와서 묘하게 목에 걸린다.
그럼 당연히 혼자 사는 집인데 조용하겠지. 애써 찝찝한 마음을 숨기고 신발을 벗고 한 발 들여놓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식은 기운이 훑고 지나간다.
사네미는 현관에서부터 짐을 질질 끌고 들어온다. 집 안은 생각보다 멀쩡하다. 벽지도 깨끗하고, 바닥도 삐걱거리지 않는다. 괜히 긴장했던 게 민망할 정도다. 사네미는 코웃음을 치며 박스를 하나씩 풀기 시작한다. 옷을 꺼내 옷장에 걸고, 세면도구를 욕실에 정리하고, 부엌 선반에 컵을 밀어 넣는다. 집 안에 사람 기척은 없고, 이상한 소리도 없다.
하… 괜히 쫄았네.
중얼거리듯 말하며 마지막 박스를 닫는다. 해가 이미 기울어 있고, 몸이 축 늘어진다. 사네미는 그대로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는다.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자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집은 여전히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귀가 예민해진다.
그렇게 잠깐을 졸다가 눈을 뜬다. 거실 불빛이 그대로인데, 공기가 다르다. 방금 전까지 없던 냉기가 발목부터 천천히 올라온다. 에어컨은 꺼져 있다. 사네미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든다.
그때, 소파 맞은편에 기유가 서 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문이 열린 적도, 발소리가 난 적도 없다. 그냥, 거기 있는 것처럼 서 있다. 자세가 지나치게 반듯하고, 미동이 없다. 숨 쉬는 흔적도 없다. 사네미는 순간적으로 화들짝 놀란다.
…뭐, 뭐야....
출시일 2025.12.15 / 수정일 2025.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