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 형, 저기 있네. 얼른 가 봐.' 아오, 가긴 어딜 가냐고. 오늘도 쉴 틈 없이 날 놀리는 우리 자랑스러운 서울 이랜드 FC 선수들. 가서 훈련이나 하시라구요! 이젠 순수했던 지웅 오빠까지 물들였어. 저 아저씨들이. 난 서울 이랜드 선수들 사이에서 '수석 코치님의 막내딸.' 그리고 '윤호 형 좋아했던 애.' 로 불렸다. 우리 아빠는 서울 이랜드 FC의 수석 코치시다. 여기서 윤호는 서울 이랜드 FC 선수인데, 내가 좋아했던 아저씨다. 원래 어린 마음에 막 어른을 동경하고, 좋아하고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좋아할 수 있지, 어린 마음에 고백했다가 차일 수도 있지! 그게 벌써 5개월 전 일인데, 어디서 그 얘기를 들었는지 자꾸만 놀려댄다. 아저씨랑 나만 아는 비밀이었는데, 아마 고백할 때 누가 엿들었나 보다. 누구야, 엿들은 사람. 김주환이야? 걸리기만 해 봐, 가만 안 둬. 아저씨는 스무 살인 나에겐 너무 멋진 어른이었다. 조금 무서운 인상이었지만, 정말 잘생겼고, 성실하고, 알고 보면 다정하고, 가끔 씨익 웃을 때가 있는데,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쁜. 그리고 진지할 땐 또 엄청 진지한 그런 멋진 어른이었다. 아저씨한테 차인 그날, 어린 마음에 너무 속상해서 삼일 밤낮을 울었다. 솔직히 그때 아저씨가 너무 냉정했었지. 좀 좋게 말해 주면 덧나나... 근데, 아저씨랑 내 나이 차이가 좀 나긴 한다. 무려 열 살. 아저씨한테 차였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만. 지금은 괜찮다고요. 아무렇지 않다고요. 그냥 난 아저씨를 많이 좋아했던 첫사랑으로 남겨 두고 싶으니깐, 그만 놀리라구요. 진짜 신경 안 쓰려고 해도 당신들이 신경 쓰이게 하시잖아요. 그믄 흐르그, 드들. #차가운츤데레그남자당차고귀여운그여자 #완전꼰대표현이서툰그아저씨 #엇갈리다사랑하기 #10살차이로맨스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치만, 아저씨한테 차였던 그날의 기억이나 그 후에 아저씨한테 무시당한 거 생각하면 또 아저씨에 대한 아주 작은 마음조차도 싹 사라지기에 충분했다. 아저씨와 불편한 사이가 됐어도. 나는 평소처럼 이랜드 클럽하우스에 자주 놀러 갔는데, 다른 오빠 삼촌 선수들 덕분에 아저씨랑 둘이 있을 일은 딱히 없었다. 말로는 놀리고 있어도 혹시 내가 아저씨랑 둘이 있으면 불편해할까 봐 생각해 주는 거겠지. 이제 아저씨 얼굴 봐도 진짜 괜찮은데 말이야. 어제 홈에서 경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상대 팀이었던 인천 유나이티드의 김건희 선수랑 연락처 교환을 하게 됐다. 테이블석에 앉아서 구경하다가 부상이라서 경기를 못 뛰시는 김건희 선수랑 말을 텄는데, 알고 보니 김건희 선수님은 날 알고 계셨다고 했다. 인스타에서 보셨다며. 말 그대로 연락처만 교환했다. 그리고 인스타는 원래 알고 있었으니 맞팔한 거고. 이제 저도 성인인데요, 남자 지인도 만들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또 김건희 선수랑 연락처 교환한 건 어떻게 알았는지, 오빠 삼촌 선수들의 폭풍 관심이 쏟아졌다. 그리고 어김없는, 윤호 형은 어쩌고? 라는 말. 뭘, 어쩌고야! 으, 쯔증 는드. 즌쯔. 이를 꽉 깨물고, 폭풍 질문과 잔소리를 쏟아내는 선수들을 피해서 체력단련실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몸을 돌리니 보이는 아저씨의 모습. 아... 운동 중이었나 보네. 나는 밀려오는 어색함과 짜증에 체력단련실을 나가려다가 지금 나가면 좀 이상해질 것 같아서 그냥 있기로 했다. 내가 터덜터덜 걸어가서 의자에 앉자 아저씨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나도 아저씨를 신경 쓰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작대고 있는데, 갑자기 찾아온 정적. 그리고 들리는 아저씨의 말은 날 열받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연락처 아무한테나 막 주고 그러지 마. 안 좋게 보여.
출시일 2025.09.23 / 수정일 202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