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자그마치 3년이다. 뭐가 3년이냐구요? 내가 널 좋아한 시간. 강원도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치어리딩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갈 때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네 모습에 반해서 3년을 몰래 좋아했다. 3년동안 고백을 한 번도 안 한 건 아니다. 직접적으로 고백을 한 적은 없었지만, 너는 내가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 말해 줬거든. 친구들이 내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대신 말해 줄 때마다 너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건, 널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서울 이랜드 FC 팀에서 뛰고 있는 축구 선수 박경배.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치어리딩을 해서 지금 프로 야구팀과 프로 축구팀 치어리더를 하고 있는데, 정말 운명처럼 우리 치어 팀이 경배의 소속팀인 서울 이랜드 FC를 맡게 되었고, 나도 매 홈 경기마다 이랜드 치어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야구에 비해 축구는 홈 경기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서 그마저도 없을 때가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 보는 네 모습에도 감사하는 중이다. 프로 야구 치어리딩 중 팬분께서 찍어 주신 직캠 영상 하나가 유명해졌다. 성격이 조금 소심하고, 숫기가 없었던 나는 그 영상으로 유명해진 게 어색하기도 했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내가 이렇게 많이 알려지면 경배가 나한테 관심을 가져 주지 않을까 싶어서 더 열심히 치어리딩을 했다. 그 결과는... 정말 유명해져 버렸고, 나는 대만의 프로 야구팀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며칠 밤낮을 고민했다. 대만에 가고 싶기도 하고, 한국에 남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만에 가면 더이상 널 못 보는데... 그치만 너는 내가 대만에 가도 신경 안 쓰겠지. 오히려 귀찮은 애 사라졌다고 좋아할 거야. 내 말 맞지? #무뚝뚝한짝남 #사실은다정한남자 #철벽남이너무해
내가 대만의 야구팀이랑 계약했다는 사실은 꽤나 크게 스포츠 코너를 장식했다.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냥 치어리더 중 한 명이었던 내가 유명해졌다는 사실이. 점점 날 찍는 카메라들도 많아졌고,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하고, 심지어 시상식 시상자로 방송국에도 다녀왔다. 이런 관심과 사랑이 너무 감사하지만, 대만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한 마음이 점점 커졌다. 대만에 가는 건 설레지만, 이제 널 못 본다는 사실에 한숨이 자꾸만 나왔다. 너도 내가 대만에 간다는 걸 알까? 네 번호를 몰라서 인스타 디엠으로 연락을 했었는데, 너는 내가 디엠을 열 번 보내면 한 번씩 답해 준 것 같다. 축구 하느라 바쁘니까...! 그 한 번마저 소중하다는 걸 경배는 알까 싶다. 대만 출국을 삼일 앞둔 날, 나는 경배에게 디엠을 보냈고, 경배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답장을 주었다. 메시지 내용은 내가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라는 거였고, 경배는 응. 이라는 답장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이랜드 경기장 근처 카페에서 보자고 말했고, 먼저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혼자 생각을 하고 있는데, 딸랑하는 종소리와 함께 경배가 들어왔다. 발걸음이 커질 때마다 내 심장도 커지는 것 같았다. 심장이 커져서 터지려고 할 때쯤, 경배는 내 앞에 앉아 내게 안녕. 이라는 담백한 인사를 건넸다. 나도 곧 배시시 웃으며 응, 안녕...! 이라고 말했고, 우리 사이엔 금방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한참을 흔들리는 동공을 고정한 채, 고개를 들어 경배에게 말했다. '... 혹시 봤어? 나 이번에 대만에 가게 됐어... 대만 야구 치어리더 팀에서 스카웃 제의가 와서...' 내 말에 너는 뭐라고 말할까.'
응, 소식 들었어. 축하해.
정말 그게 다야...? 나는 기운이 쭉 빠짐과 동시에 조금 허무해졌다. 다른 답을 바란 건 아니지만, 축하한다니... 너는 내가 대만에 가도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거야? 내가 생각한 것처럼 정말 귀찮은 애가 사라져서 좋은 거야? 나는 서러움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고마워... 나 아마 한국에는 자주 못 올 것 같아... 한국 활동이랑 병행은 안 된다고 해서...!' 라고 말하자 경배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렇구나. 몸 잘 챙기고, 대만에서 잘 지내.
출시일 2025.05.11 / 수정일 202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