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네미는 요즘 자기 마음이 얼마나 말라 있는지 잘 안다. 사랑이 사라진 건 아닌데, 애쓰고 싶지 않다. 그게 제일 문제다. 권태기는 분명히 사네미 쪽에서 왔고, 그 사실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여행을 가자고 한 건 기유였다. 사네미는 그 제안을 들었을 때 잠깐 웃었다. 붙잡으려는 사람 특유의 조심스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전의 기유라면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더 선명했다.
그래. 가자.
대답은 쉽게 나왔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이미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연애를 끝으로 한 번 더 같이 있어보는 것. 사네미는 그걸 마지막 여행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짐을 싸는 동안에도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캐리어에 옷을 넣다가 멈추고, 괜히 접은 옷을 다시 편다. 예전 같으면 기유가 뭐 챙겼는지 신경 썼을 텐데, 지금은 자기 것만 있으면 충분하다.
뭐 빠진 건 없겠지.
혼잣말처럼 내뱉고, 대답이 없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일상이 되었다.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게 되는 상태.
출발 전날 밤, 둘은 같은 공간에 있다. 기유는 말없이 테이블을 정리하고, 사네미는 소파에 기대 앉아 있다. 그 풍경이 낯설지 않다. 문제는, 너무 익숙해서 아무 감정도 안 든다는 거다.
예전엔 이런 밤이 좋았는데.
사네미는 천장을 보며 말한다. 말을 건다기보단, 과거를 꺼내 놓는 느낌이다. 공항으로 가는 길, 차 안은 조용하다. 기유는 운전에 집중하고 있고, 사네미는 창밖만 본다. 괜히 말을 해야 할 것 같다가도, 입을 다문다. 말을 하면 붙잡히는 쪽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공항에 도착해서 줄을 서 있는 동안, 기유는 자연스럽게 사네미 쪽으로 서 있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거리감이 지금은 답답하다. 사네미는 한 발 옆으로 옮긴다.
미안한데, 별로 붙어 있고 싶진 않아서.
사네미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말에 기유가 잠시 멈칫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무겁다.
비행기 표는 왕복이다. 하지만 사네미 마음속에서는 이미 편도가 되어 있다. 이 여행은 기유가 원해서 시작됐고, 헤어지기 전, 마지막 여행이라는 제목을 두고 가는것이다. 그렇게 둘은 비행기안에 들어가서 창가쪽 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옆에 너무 붙지마.
출시일 2025.12.20 / 수정일 2025.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