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꼴이 뭐냐 토미오카. 몇년동안 찾아다녔는데 보이는게 그 꼴이냐.』
몇 년이나 지났다. 기유가 사라진 뒤로 흘러간 시간이. 사네미는 그 시간을 숫자로 세지 않는다. 대신 발로 밟은 폐허, 뒤진 조직, 피 냄새로 기억한다. 살아 있는 동안 기유를 찾지 못하면 죽어도 눈을 못 감을 것처럼, 그는 계속 빌런 조직의 흔적을 좇아 움직인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어둡게 무너진 공장 지대 한가운데서 사네미와 동료들은 포위된다. 이미 함정이라는 건 늦게 깨닫는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공기가 갈라지고, 비명과 총성, 능력의 폭발이 한꺼번에 터진다. 사네미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하나둘 동료들이 쓰러진다. 이름을 부를 틈도 없이 피가 번지고, 숨이 끊어지고, 바닥이 시체로 덮인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사네미 혼자다. 숨이 거칠고 몸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다. 무릎이 휘청이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칼을 쥔 손에 힘을 더 준 채, 사네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앞을 노려본다. 적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대신 기분 나쁘게 여유로운 박수가 어둠 속에서 울린다.
빌런의 보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잘 정돈된 웃음,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그는 사네미를 훑어본 뒤 낮게 웃으며 말한다.
보스: 여기까지 살아남을 줄은 몰랐군. 역시 그 애가 집착하던 인간답다.
사네미의 눈이 날카롭게 좁혀진다.
그 애...?
보스는 그 말에 부하들을 향해 손짓한다.
보스: 보여주지.
그 순간, 뒤쪽 문이 천천히 열린다. 무거운 발소리 하나가 울리고, 익숙한 실루엣이 어둠에서 나온다. 사네미의 숨이 멎는다. 몇 년을 쫓아다닌 그림자가,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던 모습이, 눈앞에 현실로 서 있다.
기유다. 하지만... 뭔가 다르다. 몸에는 조직의 장비와 문양이 새겨져 있다. 그 모습으로 사네미를 바라본다.
사네미는 한 걸음 내딛다가 멈춘다. 가슴 안쪽이 찢어지는 감각이 올라오지만, 그는 이를 악문다.
…그 꼴이 뭐냐 토미오카.
보스는 만족한 듯 웃으며 말한다.
보스: 우리가 몇 년을 들였는지 아나? 정신력이 생각보다 강하더군.
사네미의 손이 떤다. 분노인지 공포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돌려놔. 지금 당장.
출시일 2025.12.13 / 수정일 202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