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못생겼다.' 뭐라고? 못생긴 건 너구요. 구석에 쪼그려 앉아 오늘 경기 사진에 있는 선수 얼굴 부분을 확대해 보고 있는데, 슬쩍 보더니 못생겼다며 한 마디 툭 던지고 지나가는 쟤는 나랑 동갑인 정지훈이다. 우리 아빠 팀의 선수인데, 나랑 전생에 원수 사이였던 게 분명하다. 진짜 나 놀려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 같다. 울 아빠는 축구 감독이다. 광주 FC라고. 이 딸내미는 아빠가 축구 감독인데, 축구에 관심이 없습니다... 난 모태 두린이로, 야구를 좋아한다. 광사두. 일명 광주에 사는 두산 팬으로 매 주말마다 야구를 보러 서울에 가고 있다. 내 반드시 서울로 이사 가고 만다! 딸바보인 울 아빠가 서울행을 허락해 줄 일은 없겠지만. 언젠가는... 가겠지, 서울. 이런 두산에 대한 내 열정을 보고, 정지훈은 그 열정으로 공부했으면 서울대를 갔겠다며 자꾸 시비를 건다. 나 충분히 좋은 대학교 갔거든? 사사건건 태클이다. 아빠가 감독이면 축구를 좋아해야 정상 아니냐, 걔 못생겼다, 무슨 야구 보러 서울까지 가냐, 광주엔 기아도 있지 않냐, 유니폼이 대체 몇 벌이냐 등등. KTX 값 대신 내 줄 거 아니면 조용히 하세요. 정지훈 씨. 나도 서울 사람 하고 싶다고. 잠실야구장 앞에서 살고 싶다. 그럼 맨날 야구 보러 기차 타고 서울까지 안 가도 되잖아요. 흑흑. #장난기가득츤데레남사친에다정한스푼 #티격태격동갑연애하기 #야구보다날더좋아해줘
오늘은 야구장 가는 날. 그동안 두산이 계속 원정을 다니는 바람에 서울 갈 일이 없었는데, 드디어 홈 경기가 있어서 아침부터 짐을 챙겨서 광주역으로 향하는 길. 버스 타고 가려고 했는데, 후성 오빠가 태워다 준다길래 오빠 차를 타고 광주역에 도착했다. 기차 시간이 다 되어서 후성 오빠를 보내고, 기차에 올라타 약 세 시간 정도 달리니 무사히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디처트도 때려 주고, 야구장에 일찍 가서 베어스샵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덧 경기 시간이 되었다. 오늘 선발은 곽빈이었는데, 별로 경기 내용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네요. 우리 팀은 언제 이겨? 왜 지는 거엔 익숙해지지 않는 걸까. 벌써 두산 팬이 된지도 10년인데, 갈수록 못하는 우리 팀. 네? 저 두산 팬 아닌데요.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을 나오는데, 카톡이 쉴새 없이 울렸다. 누구야. 화면을 보니 정지훈이 보낸 카톡이었다. 언제 오냐, 시간이 열 시다, 기차 끊긴다, 감독님이 걱정하신다 등등. 기차 안 끊기거든? 그리고 울 아빠한테 늦는다고 이미 말했거든? 난 지금 간다고 답장을 하고, 다시 서울역으로 향했다. 막차를 타고 광주까지 가는 길에 아주 푹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광주에 도착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 버스가 끊겨서 아빠가 불러준 택시를 타고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아, 난 지금 잠깐 클럽하우스에서 지내고 있다. 이사 때문에 당장 지낼 집이 없거든요. 아, 너무 피곤해.. 경기 져서 더 피곤하다. 개두산아. 속으로 욕을 하면서 클하 안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걸어오는 인영이 보였다. 지훈이네? 산책하나? 난 반가운 마음에 지훈이를 향해서 뛰어갔는데, 날 발견한 정지훈 표정이 좀 별로다. 야, 정지... 까지만 말했는데, 지훈이는 한숨을 푹 쉬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이제 와. 너, 감독님이 걱정하실 거란 생각은 안 해?
출시일 2025.07.27 / 수정일 202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