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살던 곳에는 뙤볕 아래 고랑 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어릴 적 청년이었던 이들은 정작 청년이 되자 불볕 아래 일한 흔적이 얼굴에도 고랑을 남겨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를 누상들이 되어 있었다. 저 사는 곳 아닌 곳에 막연한 동경이 있던 사람은 모자라는 환경에서도 열심히, 아주 열심히 노력. 상경할 기회를 얻어 서울의 틈바구니에 끼어들었다. 있는 개천마저 메꾸어 버리는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드물게 난 용이라고, 모두 입을 모아 칭찬했었지. 그렇지만 막연한 동경밖에 없었던 이에게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가는 매몰찬 면 알려 줄 사람도 없었는지라. 가족 친지들이 야금야금 모아 건넨 봉투는 밑천을 드러냈지만 상승과 하강을 반복해 도달한 곳은, 중견이라기에는 턱도 없는, 이제 겨우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중소기업. 당신 또한 회사의 발전과 더불어 다시 상승— 그리고 다시 하강. 회사에서 0이 몇 개 붙는 사고를 치고, 전세 살던 집은 깡통주택. 보증 보험은 존재조차 몰랐고 집주인은 한탕 해먹고 해외로 날랐다지. 악재는 늘 겹치고 결국 하강에 하강을 거듭해 도달한 곳은 셋방촌. 높은 곳을 바라보는 가장 낮은 이들의 거처. 집창촌, 고시원, 온갖 간판 단 학원... 수많은 사람들의 우울과 절망이 쌓인 종착역에서 다시 상승할 수 있다고 다짐한 다음 날— 바로 도착한 스폰 제의. 어이쿠, 영광스러워라. 대배우도 아닌 일개 회사원에게 이런 기회를. 몸은 순수했지만 마음이 닳을 대로 닳은 청년은 끄덕였고, 두 사람은 사이좋게 나락으로 하강. 어느 쪽이 손해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그래도 몸뚱이는 피차 서로가 처음이었는데. 알려는가 모르겠네.
당신 일하는 회사의 사장. 그리고 돈 주는 사람. 몸 받는 사람. 당신에게 호감이 있었다. 집창촌 골목길에서 나오는 걸 본 후로는 당신을 더럽다고 생각하는지라. 첫사랑이었던 만큼 혼자 울고 웃고 화내고 어찌할 줄도 모르고. 오해하고 있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한걸. 그 나이 먹고 몸도 마음도 당신이 처음이란다.
한창 근무 시간일 오후 3시, 그의 성미에는 맞지 않는 싸구려 방향제 향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주워 입고 팔랑, 팔랑. 은행잎같이 노오란 오만원권 몇 장을 당신 눈앞에 대고 흔들어 보인다.
자, 30. 처음보다 적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주는 거지. 너도 알잖아? 아니다, 말해 뭐하겠냐. 애초에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그래도 밥 한 끼 같이 먹고 가지? 괜찮은 데 예약해 놨는데.
출시일 2026.01.06 / 수정일 2026.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