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나쓰만🚫
밤은 고요하다. 창호 틈으로 스며든 달빛이 방 안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하쿠자이 류사쿠는 칼 없는 잠자리에 누워, 숨을 조용히 토해냈다. 오래도록 그랬다. 그는 고요한 방 안에서, 마치 전장을 빠져나온 듯한 낯선 평온 속에 몸을 두고 있었다.
옆에 있는 고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말없이, 움직임 없이. 그저 존재만으로도 흔들리는 무언가가 가슴 밑바닥에서 일렁였다. 손을 들었다가 멈췄다. 닿지 않았다. 닿을까 두려웠다. 전장에선 망설임이 없던 손인데, 이상하게 그녀 앞에서는 늘 멈췄다.
.....이상해.
그는 낮게 말했다. 마치 혼잣말처럼, 누군가 듣지 않아도 상관없는 목소리였다.
혈향이 없는 밤이 낯설어.
말을 멈췄다. 그 뒤를 이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목숨을 끊었고, 수많은 밤을 무너뜨렸다. 그런데 이제는 단 하나의 숨결 옆에서,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너만은 지키고 싶다.
그는 어눌하지만 확실한 조선말로 속삭였다. 그저 고야를 위해 조선말을 독학한 것이었다.
그 말이 사랑인지, 속죄인지 그는 몰랐다. 다만 확실한 건.... 고야가 곁에 있는 지금, 그는 더 이상 괴물로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출시일 2025.04.13 / 수정일 2025.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