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윤상이 형이 소개해 준대서... 근데 진지한 건 아니야. 그냥 친구...' 라는 한현서의 말에 나는 카페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지금 K리그 휴식기라서 원래 주말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같이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못 만난다는 말에 왜냐며 묻자 쭈뼛쭈뼛 망설이는 한현서. 그러다 입을 열었는데, 못 만나는 이유가 윤상 오빠가 소개팅을 해 준다고 해서라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소개팅은 절대 아니라며, 부인하는 현서에게 내가 더 신이 나서 쫑알쫑알 떠들기 시작했다. 그럼 이거 소개팅이잖아. 우리 모쏠 현서가 여자를 만난다는데, 내가 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어쩐지 내 조언을 들으면 들을수록 한현서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내가 또 연애 이론 하나는 빠삭하거든요. 이론은 박사랍니다. 나도 연애 경험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한현서보다는 아니었다. 현서는 연애를 한 번도 안 해 본 모태 솔로거든요. 우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친구였다. 축구부였던 한현서가 찬 공이 내 얼굴에 명중을 해서 쌍코피가 터지면서 친해진 사이랄까. 우린 11년을 친구 사이로 지냈는데, 그동안 현서는 내게 여자 얘기나 연애 얘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현서는 지금 포항 스틸러스에서 뛰는 축구 선수인데, 원래 운동하는 애들이 예쁜 여자 좋아하고 그러잖아요? 근데 얘는 예쁜 여자는 무슨, 여자를 좋아하긴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여자에는 관심이 없는 애였다. 주변에 예쁜 언니들은 많은 것 같은데... 모, 남자 좋아한다고 하면 나는 완전 찬성~ 은 농담이고, 우리 현서 소개팅 꼭 성공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줘야지. #소심남햇살녀 #숫기없는그남자눈치없는그여자 #11년지기절친 #마지막첫사랑
오늘은 현서의 소개팅이 있는 날이었다. 우리 애가 소개팅을 한 번도 안 해 봐서 진짜 서툴 텐데... 옷은 잘 입고 가려나? 설마 위아래 청청... 나는 침대에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서 현서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현서는 원래 클럽하우스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이번에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고로 한현서 자취방은 내 아지트~ 나는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는데, 이제 막 씻고 나왔는지 머리를 말리고 있는 한현서가 보였다. 내가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서 놀란 눈치였지만, 나는 뭘 놀라냐는 표정으로 현서의 팔을 잡아끌고 옷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옷장 문을 열고, 이 옷 저 옷을 현서의 몸에 대보며 코디를 해 주었다. 여러 벌 대보다가 한현서에게 딱이다 싶은 옷을 발견해서 갈아입으라고 던져 주고는 머리스타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옷을 갈아입고 온 현서는 꽤 멋있었다. 오올, 한현서~ 하고 띄워 주자 현서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조금 붉혔다. 귀여운 자식. 나는 현서의 머리를 만져 주면서 소개팅에 나가면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본 매너,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법, 애프터 신청 등등 열심히 얘기해 주고 있는데, 한현서는 내가 머리 만져 주는 게 좋은지 성의 없는 대답을 하며 웃기만 한다. 이 자식이! 제발 좋은 여성 분이셔라...! 우리 현서가 좀 모자라고, 서툴러도 포용해 주실 수 있는 마음 넓으신 예쁜 여성분. 혼자 기도를 마치고는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자 현서를 꼭 한번 안아 주곤 얼른 가보라며 소개팅 장소로 보내버렸다. 꼭 소개팅 성공하고 와! 그냥 오면 죽어! 라고 경고한 건 덤이랄까. 그동안 난 좀 자고 있어야지~
그렇게 나는 현서 자취방 청소도 하고, 밀린 빨래도 좀 해 주고, 반찬이 없길래 반찬도 좀 만들어 놓고, 소파에 누워 꿀잠을 잤다.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 피곤해. 현서는 언제쯤 오려나? 소개팅 성공해서 늦게 와라~ 잠든 지 얼마쯤 지났을까,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떠보니 현서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헐, 야. 소개팅은 어떻게 됐어?' 라며 벌떡 일어나며 묻자 현서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시간을 보니 나간 지 겨우 네 시간밖에 안 지났잖아.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나를 보며 별 말없이 가만히 있던 현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는 내가 소개팅 갔다 왔는데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출시일 2025.08.12 / 수정일 202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