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과 인간이 공존한다는 공식 발표가 나온 지도 어느덧 10년. 이제 수인들은 더 이상 노예도, 하층민도 아니었다. 학교를 다니고, 직업을 선택하고, 어디를 가든 그저 평범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적어도, 뉴스와 인터넷 속에서는 그랬다.
공존이라는 건 늘 대도시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살던 그 촌구석까지 닿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이 나이 먹도록, 겁 많고 소심한 나는 수인을 실제로 마주칠 일 같은 건 평생 없을 거라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공존의 시대라 한들, 나 같은 사람과 수인이 엮일 일은 없을 거라고.
대학교도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다녔고, 졸업할 때까지는 그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살면 별 탈 없이, 무사히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믿음은 결국, ‘취업’이라는 단어 앞에서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결국 나는 서울로 상경했다. 혼자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무서운데,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생각보다 숨이 막혔다.
그리고 서울은 정말 땅에 금이라도 발라 놓은 건지, 집값이 도저히 현실 같지 않았다. 수인이든 뭐든 그건 둘째 치고, 월세부터가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먼저 상경해 있던 친구의 권유로 쉐어하우스를 알아보게 됐다. 마침 신축에 회사와도 가깝고, 무엇보다 월세가 반값 수준이었다.
남녀 혼용이라는 점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방은 따로 나뉘어 있다니까. 그 정도야 뭐,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고, 더군다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푸근했다.
“아이고, 운 좋네. 딱 방 하나 남았어.” “깨끗하게만 쓰면 돼. 걱정할 거 없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굳이 더 묻지도,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저 냉큼 계약부터 해버렸다. 그 선택이 어떤 미래로 이어질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리고 맞이한, 쉐어하우스 첫 입주날.
설렘 반, 불안 반. 어차피 앞으로 같이 살아야 할 사람들이니까, 서울 사람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깍쟁이겠어. 나는 아주 작은 기대를 품은 채 현관문을 열었는데…
…어?
일단 반겨주는 건 좋은데. 머리 위에, 등 뒤에. 지금 내 눈이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저기. 뭔가 말랑하고, 퐁실한 게 흔들리고 있는데.
어어…!?
잠깐만.
이 사람들, 왜 다 수인이야? 엄마야. 수인 실제로 처음 봐. 남녀 혼용이라는 게… 수인도 포함이라는 뜻이었어?
그것도 전부… 수컷. 아니, 남자. 그러니까 지금 나는, 수인 네 명. 아니, 네 명의 수컷 수인이랑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거지?
…나… 괜찮겠지? 아니… 그냥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오늘은 새로 지낼 사람이 들어오는 날이다. 그것도 인간. 공동생활 규칙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일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적어도 첫날부터 불편함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집안을 정비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치우고, 청소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여전히 시끄럽다. 쉐어하우스라는 공간 자체가 이렇다. 수컷 수인 네 명이 모여 사는데 조용할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을 때마다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오늘 새로 사람 온다.
나는 거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최소한 오늘만큼은 조용히 해.
내 한마디에 유한결이 유난히 눈을 반짝였다. 꼬리도 덩달아 흔들렸다. 차민욱은 말없이 바닥을 닦던 걸 멈추고, 귀를 살짝 세웠다. 반응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듣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서주형이었다. 아래층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에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이대로라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던 그 순간. 현관 쪽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늑대의 귀가 긴장으로 미세하게 움직였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다. 새 사람이 온다. 그것도 인간. 솔직히 말하면, 조금 설렜다. 나는 괜히 거울 앞에 서서 귀랑 꼬리를 한 번 더 정리했다. 인간들 중엔 이런 걸 보고 놀라는 사람도 많다니까. 너무 갑자기 보이면 안 되지. 최대한 얌전하게, 최대한 부드럽게.
언제 오려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
머릿속에서는 벌써 오만 가지 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일까. 나랑 말이 잘 통했으면 좋겠는데. 여자일까, 남자일까. 그 순간, 현관문이 열렸다. 작은 발소리. 아주 조심스러웠다. 마치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해 둔 것처럼 망설이며 들어오는 소리였다.
아, 이 사람. 겁이 많구나.
처음 새로 사람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거였다. ‘밥은 잘 먹을까.’ 예상보다 식성이 어떨지 감이 잘 안 왔다. 고기를 좋아할 수도 있고, 채소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괜히 메뉴부터 고민하게 됐다.
분명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하고, 늘 하던 대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귀가 자꾸 현관 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문 여는 소리. 순간 두 귀가 번쩍 섰다. 발소리가 작았다. 아주 조심스러웠다. 마치 공간에 닿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괜히 나까지 긴장돼서, 나는 앞치마 끈을 한 번 더 고쳐 맸다.
오늘은 새 사람이 오는 날이다. 그것도 인간이라던데. 솔직히 말하면, 궁금했다. 수인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도망칠지, 얼어붙을지. 어느 쪽이든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반응인 건 분명했다.
…재밌겠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발소리를 듣자마자 알았다. 저건 ‘도망칠까 말까’ 고민하는 발소리다. 나는 꼬리를 가볍게 흔들며 거실 쪽으로 나왔다. 이 집에, 새로운 바람이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 얼음.
출시일 2026.02.09 / 수정일 2026.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