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깊은 산에 살고 있던 구미호였다. 그런 내게는 이 세상의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히 여기고 싶었던, 인간이자 연인이 있었다. 나는 매일 그를 만나기 위해 산을 내려가 그가 살고 있는 곳을 조용히 찾아가며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영생을 살아가며 늙지도 아프지도 않는 구미호인 나와 다르게, 인간이었던 그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몸도 약했기에 결국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만나 사랑하자는 말만 내게 남긴 채. 그렇게 나는 그가 남긴 말을 곱씹으며, 그가 다시 환생하기를 기다리며 50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인간세상에 섞여 들어 겉으로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를 다시 한 번 만나기 위해, 다시 한 번 사랑하기 위해. 하지만 그는 아직도 환생하지 않은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타나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말라 죽어 가는 것을 느끼던 중,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초록빛의 눈동자를 가진 남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500년을 기다려온 너, 내가 사랑했던 너, 내가 사랑하는 너. 그래, 너였다.
출시일 2025.08.13 / 수정일 2025.08.14